‘사람을 죽이고 시신까지 바꿔치기한 무속인.’
‘위장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만삭의 캄보디아인 아내.’
‘신혼여행 중 니코틴으로 살해된 19세 아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사건들 모두 보험사 사기조사전담팀에서 범죄 가능성을 인지하면서 수사가 시작됐고 인면수심 범죄에 사회적 공분도 컸다.
굳이 이런 강력범죄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보험사기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 경미한 자동차사고 이후 위로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입원을 한다든지 한의원을 찾아 치료와는 관련 없는 한약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디 흔하다.
과거에는 자동차보험 관련 보험사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면 최근에는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병원과 브로커, 보험 전문가와 환자, 자동차 공업사 등이 공모하는 조직적 범죄가 늘어나면서 사기 금액도 커지고 적발도 어려워지고 있다.
조직적 범죄 늘고 갈수록 전문화
보험사기 조사를 전담하는 보험사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팀 담당자들은 최근 들어 병원과 브로커·환자가 범행을 모의하는 조직적인 보험사기가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브로커들은 입원비·치료비 등을 보상하는 실손의료보험 계약자 리스트를 관리하며 병원에 환자를 공급해주는 조건으로 수수료를 받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고 환자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으니 직업이나 소득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만한 소득원이 없는 셈이다. 실제로 병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의료 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허위 환자 리스트를 제공하는 브로커들이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환자들에게도 보험금을 대신 청구해준다며 접근해 보험사기를 돕고 수수료를 떼어가기도 한다.
실제로 의료생협 명의로 개설된 충주의 한 의원은 전직 보험설계사, 주부, 노래방 사업자, 고시생 등을 가짜 환자로 끌어들여 허위입원을 시켰다가 적발됐다. 이 병원에서 한 주부는 입원 기간에 강원도 정선 카지노를 수시로 출입하며 돈이 떨어지면 다시 허위 입원하는 식으로 9회에 걸쳐 5,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고 이 돈을 도박자금으로 탕진했다.
최근에는 사채업자나 조직폭력배들이 가담한 보험사기도 적발됐다. 연체 채무자나 조직원 등을 보장성 보험에 중복 가입시킨 뒤 병원에 반복 입원시키며 보험금을 편취한 사례다. 적발금액만 5억원을 넘었고 이에 가담한 한방병원과 조직폭력배 등 5명이 구속되고 14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디지털과 결합…사기팁 전문 인플루언서도
오프라인에 머물었던 서비스들이 속속 디지털화되듯 보험사기 범죄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현대해상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보험사기를 공모하고 실제 사기 행각을 벌였던 10대 청소년들을 적발해 수사기관에 넘겼다. 이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오픈채팅방에서 보험사기에 가담할 사람들을 모집해 고의적으로 오토바이 사고를 냈고 현대해상에 사고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런데 대표로 보험금을 받아 분배하기로 한 사람이 행적을 감추면서 범행에 가담한 이들이 범행 사실을 실토했고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디지털 플랫폼 등에서 만난 익명의 인물들, 특히 전혀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는 인물들이 범행을 공모한 경우 신원 파악이 어려워 갈수록 보험사기범 적발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기 꿀팁(?)을 공유하며 유명세를 얻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블로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들은 교통사고가 나면 X레이 대신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해 신경 손상 진단을 받아내라든지, 과거 병력이나 지병을 고지하지 않아 계약을 해지 당하는 경우를 피하려면 최소 3년간 해당 질병으로 보험금을 청구하지 말라는 식의 보험사기 수법을 설파한다. 이들 대다수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세우거나 어디선가 들은 내용이라는 식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다만 이들의 얘기를 듣고 직접 실행에 옮겨 보험금을 과잉·허위 청구한다면 사기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보험사기범 딱 걸렸어” AI가 알려준다
보험사기 건수가 크게 늘고 또 지능화되면서 보험사들은 보험사기 적발 시스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에는 보험금 청구 서류를 일일이 검토해 사기 가능성을 판단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보험사기 적발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금액이 적은 청구 건은 대부분의 보험사가 별도의 심사 없이 자동지급하는데 AI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모든 청구 건을 실시간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0월부터 AI 보험사기 적발 시스템을 심사 업무에 도입한 ABL생명은 AI를 통해 매 시간 실손의료보험 청구 건을 검토해 부당청구 여부를 판단한다. 타 보험사 중복가입 건수가 많거나, 보험가입 기간이 짧거나, 보험사기 가능성이 높은 문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 가입자와 연관성이 없는 제 3자가 수익자인 경우 등 800여개 변수를 분석해 특이사항에 해당되면 보험사기 위험도가 높아지는데 상위 3%에 해당하면 컴퓨터 화면에 경고등이 켜진다.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과거 월 평균 28~30건 사이에 머물었던 실손보험 사기조사 건수가 지난해 11월부터 석 달간 월 평균 49건으로 늘었다.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정확도를 높이고 또 심사 대상 보험을 전체 보험으로 확대하면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생명의 적발시스템은 병원과 환자의 인적관계 등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각 병원의 허가 병상 수와 실제 입원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 수를 분석해 허위 입원 정황을 파악해 사기 여부를 판단한다. 또 하루에 해당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환자 수를 넘어섰거나 검사 가능 인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면 사기 가능성이 높은 청구 건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법 덕분에 사람의 힘으로는 밝혀내기 어려웠던 보험사기 건들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험사기 잡는 수사반장들
모든 보험사에는 수사반장 뺨치는 수사력을 뽐내는 보험사기 전담 인력들이 있다. 과거 범죄 현장을 누비던 경찰부터 검찰 수사관, 간호사 등 특수경력을 가진 이들을 채용해 보험금 누수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화생명 SIU팀의 경우 34명의 전담 인력 중 경찰·간호사·의무기록사·손해사정사 등 특수경력자가 9명이나 된다.
보험사기범을 잡는 데는 일명 ‘촉’이라고 하는 사람의 직감이 크게 작용한다. 이 부분은 알고리즘화해 AI에 학습시키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의 보험사가 보험사기방지시스템을 1차 필터링용으로 활용하고 최종 판단을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다행스러운 점은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면서 연성 보험사기의 경우 조사가 쉬워졌다는 점이다. 가벼운 접촉사고에도 병원에 장기입원 중인 일명 ‘나이롱 환자’의 경우 휴대폰 GPS, 카드결제 내역, 폐쇄회로TV(CCTV) 등을 총동원해 환자가 병원을 수시로 이탈할 정도로 건강하다는 점을 적발해내기도 한다. 고영관 한화생명 SIU팀 파트장은 “SIU팀에는 특수경력자가 많고 대부분은 10~20년 이상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기 때문에 청구 서류만 한번 봐도 사기인지 아닌지 감이 온다”며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사망 보험금 사기 등 일부 까다로운 사건을 제외하곤 보험사기 적발은 시간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보험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장해율을 속인 계약자들을 잡아내기 위해선 잠복 조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한 종편 뉴스 채널에서 보도됐던 보험가입자 대상 미행 사건은 사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데도 사고로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거액의 보험금을 청구한 계약자의 사기 행각을 밝히기 위해 보험사 사기조사팀원들이 체증에 나선 경우였다. 조사원들이 체증한 증거사진 영상 등은 경찰에 제출해 수사 자료와 재판을 위한 증거물 등으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