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홀리

힌두 전설에 나오는 히란야카시푸라는 왕은 자신을 무적으로 만드는 초능력을 믿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을 신으로 여기기 시작해 주변 사람들에게 경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왕은 유일하게 자신을 섬기지 않는 아들을 죽이려고 불에 타지 않는 능력을 갖춘 누이 홀리카와 함께 불 속에 뛰어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홀리카의 망토가 왕의 아들을 보호하는 바람에 홀리카만 불에 타 재로 변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홀리카 대신 짚으로 만든 인형을 태워 악을 몰아낸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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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력으로 마지막 달 보름인 3월 초순에 열리는 ‘홀리(Holi)’ 축제는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함께 갖가지 염료와 색채 꽃가루로 치장해 ‘색채의 축제’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다양한 빛깔의 염료 가루와 물감이 담긴 풍선을 뿌리거나 몸과 얼굴에 문질러준다. 이는 힌두교의 영웅신 크리슈나가 그의 연인 라다와 함께 얼굴이나 몸에 색을 칠하고 놀았다는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원전 300년께 돌에 새긴 글귀에는 홀리에 대한 묘사가 남아 있으며 16세기 조각물에도 시녀들이 물감을 탄 물총으로 왕자를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홀리 축제의 또 다른 특징은 파괴다. 홀리가 처음에는 최하층인 수드라 계층이 즐겼던 축제로 출발했듯이 축제 기간에는 카스트제도로 대변되는 기존 질서체계가 해체되는 난장으로 변한다. 축제 기간 여성의 활동 공간을 넓혀주고 성적 농담을 허용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억압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는 공동체 축제가 되는 것이다. 인도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반 국민의 감염 우려가 커지자 사람들이 대거 몰리는 홀리 행사를 취소했다는 소식이다. 인도 총리뿐 아니라 대통령도 고심 끝에 축제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14세기 페스트를 극복한 유럽에서 그랬듯이 이제는 코로나19라는 악을 물리칠 수 있는 또 다른 축제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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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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