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러, 유럽가스관 美제재에 격분...'빚더미' 셰일산업에 일격

[국제유가 폭락...불붙은 미러 원유전쟁]

"감산하면 美만 배불려" 러지도부 전략적 판단 깔려

美셰일업체, 4년내 갚을 빚만 104조...줄도산 위기

"유가 20弗 방어벽 뚫리면 세계경제도 메가톤급 충격"




러시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제유가 추락에도 감산에 반대한 것은 미국 셰일 업계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전 세계 ‘빅2’ 산유국인 러시아와 미국이 석유 패권전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해지고 있다. 당장 일격을 당한 미국 셰일 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 줄도산에 빠질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중 배럴당 31달러까지 떨어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20달러선 초반으로까지 밀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이후 초유의 원유 가격 급락 사태로 현실적 위협을 받고 있는 원유 선물 가격이 30달러선 붕괴에 이어 20달러 방어벽까지 뚫리면 전 세계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8일(현지시간)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감산에 반대한 것은 OPEC+(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 연합체) 미가입국인 미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경계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동과 러시아가 추가 감산에 나설 경우 2010년대 ‘셰일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에만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러시아 지도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러시아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OPEC+ 감산으로도 이미 글로벌 석유시장에서 미국 셰일오일의 입지가 커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의 행보는 천연가스 사업 확대를 견제하는 미국에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에까지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노드스트림2’ 가스관 구축 사업이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 사업이 러시아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노드스트림-2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이 포함된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했다. FT는 “러시아는 경쟁국인 미국의 셰일 산업은 물론 미국 경제까지 타격을 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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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미국 간 석유 패권전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당장 벌어질 러시아와 사우디 간 증산 ‘치킨게임’만으로도 전 세계 경제가 받을 충격은 거센 상황이다. 앞서 6일 OPEC+ 회의에서 러시아는 사우디의 일일 150만배럴 감산 제안에 퇴짜를 놓았다. 회의에서는 이달 말 끝나는 기존 감산(하루 210만배럴)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우디는 다음달부터 증산을 하겠다고 나섰고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도 “다음달 1일부터 어떤 국가도 감산 요구를 받지 않는다”며 증산을 시사했다.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주요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논의에서 미국의 반사이익을 우려한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에 실패하자 사우디가 전격 증산을 결정하면서 9일 국제유가가 폭락했다.    /오사카=AP연합뉴스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주요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논의에서 미국의 반사이익을 우려한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에 실패하자 사우디가 전격 증산을 결정하면서 9일 국제유가가 폭락했다. /오사카=AP연합뉴스


이 같은 신(新)석유전쟁의 여파로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폭락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 선물 가격은 한때 배럴당 31.02달러(-31.5%)까지 급락했다. 이 같은 장중 낙폭 규모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치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9일 오후(한국시간) 한때 30달러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 같은 하락세가 이어져 국제유가가 최저 20달러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4분기와 3·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배럴당 30달러로 낮췄으며 최저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도 올해 2·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배럴당 57.50달러에서 35달러로, WTI 가격 전망을 배럴당 52.50달러에서 30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의도대로 유가 급락으로 미국 셰일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유가가 최소 50달러 이상이 돼야 셰일 사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이미 저유가 기조가 이어진 가운데 미 대형 정유사 셰브런의 주가는 올해 들어 약 20% 하락한 상황이다. 미 CNBC는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업체 관계자를 인용해 “모든 석유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감산, 투자 및 배당 축소 등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이 하루 생산량을 수백만배럴씩 줄이지 않는다면 유가는 20달러대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문제는 미국 셰일 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둔화와 유가 폭락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유가전쟁까지 덮치면서 빚더미에 앉은 업체들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미국 셰일 업계가 올해부터 오는 2024년까지 상환해야 할 부채 규모가 860억달러(약 10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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