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는 늘 가수요(假需要)라는 게 존재한다. 실수요(實需要)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수요를 뜻한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종의 ‘위험회피’ 심리가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다. 가수요의 기저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가 작동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생기면 생필품 공급이 끊길 것을 우려한 나머지 라면이나 쌀·통조림·생수 등을 미리 사 놓으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가수요는 아파트 가격에도, 최근 마스크에도 붙어 있다. 가수요를 잘 관리해야 후유증도, 버블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마스크 가수요는 누가 부추긴 것인가.
정부와 여당은 언론이 불안감을 부추겨 가수요가 증폭됐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마스크가) 더 급한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했는데 그런 국민적 인식이 부족했다’며 가수요의 원인을 국민들의 양보심 부족으로 돌렸다. 가짜 뉴스다.
코로나19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을 때 정부는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써야 할 것처럼 ‘강권’했다. 정부의 코로나19 예방 행동수칙에도 첫번째가 ‘마스크 착용’이었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거나 청와대 내부 회의를 할 때도 마스크를 착용했다. 국민들은 마스크를 무조건 착용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온라인 등을 통해 닥치는 대로 구매했다. 10개가 필요한데도 1,000개를 샀다. 국내 마스크 하루 생산량이 1,000만장 정도인데 5,000만명의 국민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니 품귀 사태는 당연한 결과다.
최근에는 출생연도 끝자리 번호에 따라 약국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요일을 정한 마스크 5부제를 도입했다. 불안감이 줄긴커녕 가수요는 더 커졌다. 출생연도가 짝수인 한 지인은 “약국을 3곳이나 들렀지만 허탕 쳤다”고 토로했다. 5일에 한번, 마스크 2개를 살 수 있는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린 게 여간 분하지 않은 것이다. 하소연할 곳도 없고 정부를 향해 욕만 해댈 뿐이다. 오늘도 전국의 약국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사실 마스크 대란을 누그러뜨릴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그때마다 가수요를 진정시키기는 커녕 불안감을 키우는 쪽으로 대책을 내놓았다. 일부 여권 성향 인사는 미국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 않는다며 바람을 잡았다. 지방의 한 교육감은 마스크를 벗은 채 회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러고 있는 사이 가수요는 더 폭발했다.
지난달 중순만 해도 버스 안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수요는 가수요를 낳았다. 이름도 잘 모르던 정부 산하 공영홈쇼핑을 통해 마스크를 판매하는 깜짝 대책도 내놓았지만 곧 중단됐다. 정부는 이제 ‘면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면 마스크 제조공장이 몰려 있는 서울 면목동 봉제공장은 이미 수요가 불어나 풀가동 중이다. 중간 유통상들이 달라붙으면 면 마스크도 품귀 사태가 빚어질지 모른다.
정부가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호흡기 증상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만 했었어도 이 같은 가수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 보다 앞서서는 마스크 수출을 가장 먼저 틀어 막았어야 했다. 이후에는 KF94급 마스크도 코로나19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전의 마스크 대책들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방향을 과감하게 전환했어야 했다. 그래야 비를 맞으며 어린 자녀와 함께 마스크를 사려고 2~3시간씩 긴 줄을 서거나 점심 시간을 쪼개 메뚜기처럼 약국을 찾아다니는 일도 없었다. 마스크가 남한테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뒤늦게 나마 홍남기 부총리가 최근 “마스크 수출 금지를 더 일찍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깜짝 고백을 했다. 마스크 대책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정부가 시장의 가수요 심리를 간과하고 관리에 실패하면서 마스크 대란 사태가 빚어진 것이지 남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닌 것이다. 복합위기가 다가온 지금, 가수요를 키웠던 ‘마스크 대책’과 같은 대책들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