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금융사들에서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실제 파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금융 분야에서도 대마불사는 통하지 않는다. 과거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쳐 모두 부실화됐고 흡수·합병으로 모두 사라졌다. 당시 이 은행들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뉴욕 월가의 엘리트 사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주택부금을 내지 못한 사람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애석하게도 당시 미국은 리먼브러더스 같은 글로벌 대형 금융사를 질서 있게 정리할 제도적 준비가 미비했다. 정책당국은 우왕좌왕했다. 결국 금융사 파산을 결정하면서 확산하는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했다.
바둑에서 대마는 쉽게 죽지 않지만 죽게 되면 그 판은 패한다. 시장에서 대형 금융사는 쉽게 부실화되지 않지만 일단 파산하면 국가 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중소 금융사들의 건전성 관리와는 별도로 대형 금융사의 위기에 대한 특별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논의 결과 2011년 금융안정위원회(FSB)는 대형 금융사에 위기를 대비한 정상화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정상화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대형 금융사 정리계획을 평시에 수립하는 ‘정상화·정리계획(RRP)’ 제도의 도입을 국제사회에 권고했다. 이에 북·중·미, 유럽, 아시아 등 20개국이 이 제도를 도입했고 우리나라도 대형 금융사에 대한 RRP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계류 중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인한 ‘팬데믹’ 속에서 우리나라는 하루 1만명 이상의 진단검사 능력과 투명한 확진자 동선 공개 및 관리 등으로 코로나19 대처에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평상시에 매뉴얼 개정, 역학조사관 양성, 진단시약 긴급승인제도 도입 등 꾸준히 제도를 개선해온 덕분이다. 금융 분야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등을 교훈 삼아 언제 올지 모르는 금융위기에 대비해 정교한 매뉴얼 정비 등은 물론 RRP 제도 등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