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초강경 카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증시 대폭락이 이어지는데다 실물·금융 부문의 복합위기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자 사실상 극약 처방 수준의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가동에 나선 것이다. 기업·시장·소상공인 등 ‘스리 트랙’으로 실물위기가 금융으로 번지는 것을 서둘러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금융위원회는 17일 은성수 금융위원장 주재로 긴급 금융시장점검회의를 열고 즉시 시행 가능한 시장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기업부터 소상공인까지 컨틴전시플랜을 마련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준비된 계획들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시장안정 조치와 증시수급 안정화 방안이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우선 경기침체로 코너에 몰린 기업을 살리기 위한 지원책이 대폭 마련된다. 금융위가 만지작거리는 카드는 ‘채권시장안정펀드’다. 채안펀드는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국고채와 회사채의 과도한 스프레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펀드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10조원 규모로 조성됐다. 또 자동차나 조선업 중소·중견기업을 도와줄 채권담보부증권(프라이머리CBO) 대상을 대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코로나19로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경영난에 직면한 만큼 업종과 기업 규모의 허들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정책기관을 통한 기업 지원은 이미 진행 중이다. KDB산업은행은 코로나19 피해기업에 신규 운영자금대출, 기존 대출 기한 연장, 수출입금융 등 총 3,264억원을 지원했다. 또 설비투자붐업 프로그램, 경제활력 제고 특별운영자금 등 저금리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올 들어 총 10조6,000억원을 공급했다.
주식시장 안정화 조치도 대거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13일 공매도 전면 금지와 자사주 매입 한도 완화, 신용융자담보비율 유지 의무 면제 등의 긴급조치를 꺼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먼저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출과 출자·보증을 해주는 은행자본 확충펀드인 ‘금융안정기금’이 후속 대책으로 오르내린다. 금안기금은 2016년 한진해운 등 조선· 해운 구조조정 때 고려되기는 했지만 실제 가동된 적은 없다. 정부 지원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방어할 수 있어 적극적인 대출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증시안정펀드와 비과세장기주식펀드도 유력한 카드로 꼽힌다. 증안펀드는 증권 유관기관들이 자금을 출연해 만든 펀드를 증시안정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코스피 1,000선이 무너지자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5,000억여원 규모의 증시안정 펀드를 운용했다. 비과세장기주식펀드의 경우 2008년 10월 장기주식형펀드에 3년 이상 가입한 투자자에게 연간 납입액 1,200만원까지 소득공제와 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며 투자자의 자금 유입을 유도했다.
증시 폭락이 계속되면 주식시장 운영시간 단축과 일일 가격제한폭 축소 카드도 나올 수 있으며 세제지원 확대도 고려 대상이다. 다만 사실상 추경에 준하는 최후 대책이라는 점에서 시행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리 높지 않다. 금융위는 증시가 안정될 때까지 매일 증시 개장 전 시장점검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증시가 바닥을 치는 극단적인 상황을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증시 안정을 위한 방안을 다양하게 논의 중”이라며 “시장을 예의주시하며 단계적으로 컨틴전시플랜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소상공인 대책도 강화된다. 금융위는 16일 금융지주 임원 간담회를 열고 은행들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실질적인 금융지원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소상공인에 대한 저리자금 지원 확대와 함께 소상공인의 저리자금 대출 수요 일부를 시중은행이 흡수할 수 있도록 대출금리 감면 방안도 시행한다.
/이지윤·양사록기자 lu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