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보험을 중도해약하는 계약자가 늘어나면서 올 들어 보험사들이 지급한 해약환급금이 급증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이어지며 보험 해약이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온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기름을 부은 격이다. 매월 내는 보험료가 부담스럽거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계약자들이 만기가 되기 전에 해약에 나서면서다. 실물경제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규모 해약 사태(인슈어런스런)는 이제 막 시작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19일 서울경제가 삼성·한화·교보 등 상위 3개 생명보험사 및 삼성·현대·DB·KB·메리츠화재 등 상위 5개 손해보험사의 1~2월 해약환급금(손보는 장기 해약환급금)을 집계한 결과 올 들어 4조5,615억원의 해약환급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조2,874억원) 대비 6.4% 증가한 규모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달부터 해약이 급증했다. 3대 생보사의 경우 지난달 해약환급금이 1조4,331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17% 가까이 급증했다. 또 5대 손보사 역시 2월에만 장기보험에서 8,979억원의 해약환급금을 지급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2.7%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에는 설 연휴로 거래일 수가 올해보다 사흘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큰 폭의 증가세다.
해약환급금은 가입자가 보험계약을 중도에 해약했을 경우 돌려받는 돈을 말한다. 계약의 책임준비금에서 운영비와 일정한 해약공제비를 제외하고 난 잔액이 가입자에게 환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올 들어 해약 규모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통 목돈이 필요하거나 보험료 납입이 어려워 보험을 깨는 생계형 해약이 전체의 절반 정도 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라며 “보험자산이 매년 늘어난 만큼 해약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지만 올 들어 증가폭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아직 인슈어런스런이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올해 보험 해약환급금이 역대 최고치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지난해 국내 32개 손보사의 누적 장기 해약환급금은 11월 기준 11조8,159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 전년에도 장기 해약환급금이 11조8,702억원까지 치솟으며 최고치를 찍었는데 11개월 만에 전년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생보 업계 역시 해약이 꾸준히 늘고 있다. 24개 생명보험사의 지난해 11월 기준 누적 해지환급금은 24조4,698억원까지 불어나며 1년 만에 3.3%의 증가율을 보였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1~2월 보험 해약이 늘기는 했지만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라며 “서민층이 생계 위기에 몰리고 있는데다 국내외 금융시장까지 요동을 치면서 2·4분기부터 보험 해약이 급증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