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홍우 칼럼] 군의 '경계 실패'…누구도 말하지 않는 해법

후방기지, 근무만으로도 수면부족

수뇌부는 비현실적 '구두선' 반복

본질은 '軍시설 침입 민간인' 엄벌

동서고금 유례없어…사회가 막아야




답답하다. 군의 경계가 잇따라 뚫렸다니. 시정이 필요하다. 더 답답한 게 있다. 인식도 해법도 잘못됐다. 국민은 혀를 차고 군은 고개를 숙일 뿐 누구도 근본 대책은 말하지 않는다. 물론 군의 기강은 엄중해야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그럴 수 없다”는 말까지 남겼다. 최근 군이 비난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시에 세 군데 구멍’에 군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국민들의 실망도 크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해가 깔려 있다. 군이 ‘철통같은 경계’를 강조하면 장병들이 손에 손잡고 전선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가능하다. 경계가 삼엄한 전방에서도 감시초소의 간격은 백 수십m가 넘는다. 모든 초소를 24시간 지키려면 전 장병이 침식을 포기하고 전방 감시에만 매달려야 한다. 후방 지역의 완벽한 경계는 더욱 어렵다. 완편에 가까운 전방과 달리 병력이 부족한 탓이다. 산봉우리에 넓게 포진된 대공진지의 병력은 20명 안짝에 불과하다. 정문 근무만으로도 장병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각급 부대 사령부의 인원 부족 현상은 더 심각하다. 전방 우선 배치 원칙에 따라 구조적으로 손이 달리는 데다 간부든 병사든 고유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 외 수당도 없이 야근에 지친 행정병들은 취침 도중 깨어나 불침번까지 선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태가 불거진 이후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군 수뇌부는 ‘다시 한번 뼈를 깎는 노력으로’ 경계 태세를 점검·보완하고 훈련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가능할까.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 결의의 언어 속에 답이 있다. ‘다시 한번’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줄곧 해왔다는 얘기다. 우리 군이 언제 뼈를 깎는 노력을 안 했던 적이 있던가. ‘특단의 대책’ 역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고해성사와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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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하게 열린 군 수뇌부의 대책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를 따져보자. 경계를 강화하려면 근무 강도를 올리거나 인원을 더 투입해야 하는데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 여건 아래에서 가능한가. 무인감시시스템 확충도 정답은 아니다. 새롭게 세금이 들어가거니와 과학화 장비의 맹점도 드러난 상황이다. 군 수뇌부가 구두선(口頭禪)만 남발한 이유에 짐작이 간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 없거나, 말을 할 수 없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설마 병영의 근무 실태와 근본적인 원인을 모를 리 없겠고 송구한 마음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으리라.

잇따라 발생한 군부대 침입과 ‘경계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군의 문제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 군사시설에 들어가려고 철조망을 뚫고 땅을 파나. 침입 이후에 적발된 민간인들은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의 합당한 조치를 받았는가. 제주기지에 침입한 민간인이 어떤 소신과 명분을 갖고 있더라도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일탈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악의적인 해석과 전파. 실상을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풀리려는 의도에서일까. ‘군대가 아파트 경비만도 못하다’는 질시는 온당치 않다. 사실에 맞지도 않고 위험하다. 군의 명예와 국가의 기반을 좀먹을 수 있다.

혹자는 미군의 기강을 말하지만 턱도 없는 얘기다. 미국의 공권력은 폴리스라인만 넘어도 엄벌할 만큼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3만명 이하인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데 1만명 가까운 한국인 근로자가 투입되고 기지 정문의 경비조차 한국 민간인이 맡는다. 우리 군 기지의 울타리를 주한미군처럼 높은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치면 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 군은 미군과 달리 전천후다. 안보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최후의 보루다. 전철 운행과 마스크 생산공장까지 투입된다. 닥쳐올 모내기 시즌을 맞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인 계절노동자가 떠난 농촌에 투입돼야 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자녀로 구성된 군대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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