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연기란 말을 쉽게 하는데, 조합 입장에서는 사업비 지연에 따른 이자 비용과 이미 지출한 총회 준비 비용 등을 다 날리게 되는 셈입니다. 코로나19 위기에 당연한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상당한 재산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분양가 협상 등 조금도 양보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조합원 총회 일정이 밀린 정비업계를 취재하던 중 서울의 한 조합 관계자가 한 얘기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분담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부가 재산 피해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이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조합원 총회 연기를 최소 두 달 이상 연기하도록 권고하면서 불응시 강제조치까지 나설 방침을 시사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을 3개월 연장하는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당장 총회가 미뤄질수록 손해인 조합들 입장으로는 그다지 반갑지도 않다는 반응이다. 강동구 둔촌주공의 경우 3.3㎡당 3,550만원 수준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분양보증을 신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HUG는 2,970만원 이상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조합에서는 이 경우 조합원들이 1억원 가까운 분담금 부담을 더 떠안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와중에 총회도 두 달 이상 미뤄야 할 상황이 닥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정부에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정부와 서울시에서 연기를 하라고 하니까 따르고는 있는데 솔직히 당장 임박한 총회를 대책도 없이 미루라고 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했다.
투기세력을 잡기 위한 정부의 정책과 ‘내 집 마련’에 목을 매는 실수요 서민들의 욕구 중 무엇이 낫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 위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가뜩이나 각종 규제로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세력처럼 몰린 탓에 심적으로도 피로감이 상당한 상황이라는 점도 외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여파로 부동산 시장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세력을 잡기 위한 시장 대응 조치는 원칙대로 진행하되, 경기 위축을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