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를 계기로 열악한 고시원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졌지만 고시원 건설 기준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고시원 건설 기준을 한 단계 강화했음에도 여전히 창문조차 없는 이른바 ‘먹방’은 허용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 고시원 등이 포함된 ‘다중생활시설 기준 개정안’을 고시했다. 이 고시는 복도 폭을 1.2~1.5m 이상으로 만들고, 추락 방지를 위해 창문이 있는 경우 난간을 설치해야 하는 등의 다양한 기준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도 창문 의무 설치 기준은 신설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고시안은 지난해 11월 입법 예고한 내용보다도 후퇴했다. 입법 예고 안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다중생활시설의 최소 면적과 창 설치 기준을 정해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 했다. 그러나 최종 고시안에서는 ‘기준을 정해 권장할 수 있다’로 한발 물러섰다. 입법예고 안대로 기준이 고시됐다면 지자체가 상황에 따라 창문 설치를 의무화할 수 있었지만, 최종 고시안에서 지자체 기준이 권고안으로 약해짐에 따라 창문 설치 의무화가 어려워진 것이다.
문제는 전국 고시원의 약 절반이 밀집돼 있는 서울시가 지난해 이미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을 마련하고 방마다 창문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에 국토부가 창문 설치 등을 지자체 권장 사항으로 정하면서 서울시는 정책 운영에 위험 부담을 안게 됐다. 어쨌든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인지라, 서울시가 고시원에 창문을 반드시 설치하라고 강행했다가 이에 불복한 업자가 행정소송이라도 제기한다면 시는 패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섣불리 고시원 건설 기준을 강화할 수 없는데도 이유는 있다. 고시원에 창문 설치 등을 의무화할 경우 건설 비용이 늘어 공급이 줄어들 수 있고, 임대료가 상승해 주거 취약 계층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주거 취약 계층에게도 최소한의 기준을 갖춘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주거 기준을 높이되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임대료 부담 완화, 임대주택 지원 등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국내에는 1만 1,892개의 고시원이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5,840개는 서울에 있다. 서울시가 시내 5개 고시원을 샘플로 실태 조사한 결과 실 면적은 4㎡~9㎡(1~3평)이었다. 창문 없는 방의 비율이 높은 고시원의 경우 74%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