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 팬데믹'의 3대 대응수칙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트럼프, 주가하락 우려 재앙 방관

'현금 지급방식 재량권' 줘선 안돼

대형사업체도 필요에 따라 폐쇄

대량실업 이후 경기부양책 마련

생활고 겪는 근로자 공적지원해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대놓고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답다. 인종주의적 성향과 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대표적 특성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참에 코로나19에 ‘트럼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여주자. 그의 말이 맞다. 코로나19의 기원은 미국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재앙을 키우기에 충분할 만큼 더뎠고 그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이렇다 할 대책조차 내놓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의 대응방법을 비교해보라. 양국에서는 1월20일 똑같이 첫 확진자가 나왔다. 첫 발병사례가 보고된 직후 한국 정부는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과 주변인들의 감염 여부를 가리기 위한 선별검사와 병행해 이들의 동선을 추적하는 광범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또 검사 결과를 토대로 데이터를 작성한 후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비롯한 바이러스 확산방지 조치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처럼 시의적절한 대응에 힘입어 한국에서 코로나19의 기세는 빠른 속도로 수그러들고 있다.


반면 미국의 확진 검사는 이제 막 시작됐다. 국내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검사가 확대되면서 감염자 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궁극적으로 트럼프가 바이러스의 위협을 가벼이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코로나19가 독감보다 독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가 이처럼 사실을 부인하고 대응조치에 뜸을 들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주가를 끌어내릴 일체의 말과 행동을 피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트럼프의 최고위 경제참모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느닷없이 “미국은 코로나19를 ‘봉쇄’했으며 경제 역시 잘 버티고 있다”고 선언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커들로의 뚱딴지같은 발언이 나오자 증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쌓아올린 주가상승분을 거의 다 까먹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가 ‘자유낙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제대로 된 의료정책 수립은 해당 전문가에게 맡기고 필자는 경제정책과 관련한 세 가지 원칙만 제시하려 한다.


첫째, 정책의 초점을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현재의 어려움에 맞추고, 둘째 근로장려책 따위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하며, 셋째 트럼프를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첫째, 앞으로 한두 달 동안 우리가 겪을 실업사태는 불가피한 게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는 병에 걸린 근로자들이 집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 원한다.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자동차 공장 등 인간 세균 배양접시 역할을 할 대형사업체를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폐쇄하고 식당·주점 및 필수적이지 않은 소매점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소비자·기업 지출이 곤두박질치면서 추가적이고 불필요한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다.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

둘째, 트럼프와 공화당은 경제적 곤경에 빠진 근로자들을 지원하면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러나 호시절에도 통하지 않을 멍청한 주장을 팬데믹 상황에서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공적지원을 축소한 주 정부들은 독소조항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

마지막 원칙은 트럼프에 관한 것이다: 지난 며칠간 폭스뉴스와 우파 논객들은 코로나19가 진보주의자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라던 기존 입장에서 국가비상사태 시기에 대통령을 향한 비난을 중단하라는 쪽으로 논조를 바꿨다. 이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해가 되는 일이라면 아예 귀를 틀어막는 트럼프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19 발생 초기 몇 주를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냈다. 그것이 트럼프 팬데믹의 역사다. 미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현 행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하면 그를 좀 더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만드느냐에 집중됐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연방의회가 지출방식에 관한 재량권을 트럼프에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예를 들어 사업체 긴급구제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 경우에도 의회는 어떤 조건으로 누구에게 자금을 지원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해둬야 한다.

최상의 상황에서도 코로나19는 다루기 힘들다. 하물며 대응팀을 이끄는 최고책임자의 판단력이나 행동 동기를 신뢰할 수 없을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