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남자다움의 사회학] 왜곡된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필 바커 지음, 소소의책 펴냄

연약하게 감정 드러내지 말아라

모든관계 주도하는 사람되라 등

태어난 순간부터 '맨박스' 얽매여

실직·이혼·성적 욕구불만 등도

"사악한 페미니즘 탓" 돌리기도

비틀린 性관념 깨야 사회정의 유지




텔레그램 ‘n번방’에 빠져들기 전, 남자들은 ‘맨박스(Man Box)’에 갇혔을 공산이 크다. ‘약점을 보이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울지 마라. 계집애처럼 굴거나 감상적인 사람이 되지 마라.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고 모든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라.’ 이런 것들을 남자다움의 규범이라 세뇌하고 강요하는 사회적 틀이 바로 ‘맨박스’다. 더 고약한 것은 한정된 공간인 ‘맨박스’에는 아래위로 계층이 존재한다는 점인데, 보다 공격적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는 사람이 윗자리를 차지한다. ‘더 세게, 더 강하게’를 추구하다 급기야 ‘강간문화’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음악가이자 전설적 럭비선수의 아들이기도 한 브랜든 잭은 2018년 신문 기고에서 “강간문화가 실재한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적으며 “청소년들이 여성에 관해 대화하는 말 중에…‘그 여자는 강간당할 만큼 섹시하지도 않아, 말도 안되는 소리지’와 같이 노골적이고 충격적인 말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신간 ‘남자다움의 사회학’은 맨박스의 존재와 문제를 파고들며 “남자라면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은 ‘남자다움을 연기’하려는 단순한 이유로, 상처를 주고 폭력적이거나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음을 자신도 알고 있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책은 남자들을 몰아세우기보다는 잘못된 ‘남자다움’에 사로잡힌 남성들을 일깨우고 그 사회적 정의를 다시 쓰면 남자들이 받는 압박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제안한다.

재사용하면 안됨


대다수 남자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남자다움을 강요당한다. 남자답지 못하게 굴면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고립되는 반면 남자답게(라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면 칭찬과 우러름 등의 보상이 주어진다. 남자들은 연약함을 드러내서도 안되고 신체적 접촉(스킨십)도 허용되지 않는다. 신체접촉의 차단은 단절과 고립을 불러온다. “편안하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로 남자들은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자살의 유혹에 취약하고,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는 무능력한 가정폭력범이 되기 쉽다”고 저자는 씁쓸하게 말한다.


남성 청년층에서 발기부전 증상이 급속히 퍼져나가는 원인이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포르노물이라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노트북 컴퓨터나 태블릿,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포르노에서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인간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일 뿐이다. 교감과 친밀감은 배제된다. 저자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최악의 지침서인 ‘포르노가 가르쳐주는 섹스’로 무장하고 성인의 성관계에 나서는 최초의 세대”라고 우려 섞인 일침을 가한다. “남자들을 위해 남자들이 만든 것”뿐인 포르노는 보는 이를 성적인 측면과 대인관계 모두에서 실패자로 만든다.



여성인권운동이 활발해지고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면서 극단적인 남성권리운동을 표방하는 ‘여성 혐오’가 늘고 있다. 이들은 남성의 실직, 경제적 곤란, 이혼, 성적 욕구불만 등을 “사악한 페미니즘 탓”으로 돌린다. 우리말로 ‘모태솔로’와 유사한 ‘인셀(incels)’은 ‘비자발적 순결’의 줄임말이다. 이들 ‘인셀’은 “현실과 동떨어진 성적 욕구 불만에 사로잡힌 나머지 좌파 지향의 진보적 페미니스트 세상이 자신에게서 여성과 섹스할 ‘권리’를 박탈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인셀들은 기술 발전으로 정교하고 초현실적 섹스로봇이 출현할 날을 학수고대한다. 그날이 오면 여자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그러한 로봇이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등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남성은 물론 여성들도 관심을 덜 기울이고 있다.

저자는 “크고 강하고 아름다운 신체를 가지고 지구상에서 활보하는 남자들에게는 슈퍼히어로처럼 악이 아니라 선한 목적을 위해 힘을 사용할 의무가 있다”며 미래의 취업 시장에서 가장 소중한 자질인 창조성과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맨박스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제는 ‘남성의 혁명(The Revolution of Man)’이다. 1만7,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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