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후면 4·15총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후보자는 더 시끄럽게, 더 집요하게 선거운동을 펼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권자에게는 깜깜이 선거가 된다면 후보자에게는 자신을 알릴 방법을 제한시켰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일 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정국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가 달렸다. 선거 이후 당장 정책의 방향에 따라 우리 경제의 운명이 정해진다.
선거판에는 항상 고춧가루를 뿌리는 세력이 존재한다. 비례정당의 진흙탕 싸움은 정치인들 스스로 뿌려놓은 고춧가루이니 꾹꾹 눌러 찍은 표심이 걷어내겠지만 선거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의 고춧가루는 보이지도, 쉽게 구분하기도 힘들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노총은 정책 협약을 맺고 총선을 위한 ‘공동선거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민주당과 한국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추진,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친(親)노동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98만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한국노총이 여당과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공동선대본을 차린 것이다.
노조의 정치활동이 불법은 아니다. 대법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조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정치활동으로 허용한다. 공직선거법 60조에도 노동단체를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노조는 선거판에서 뭐든 할 수 있을까.
노조는 정당이 아니다. 중앙선관위는 이미 한국노총이 해당 조합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지지를 호소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노조가 정당과 동일한 정치활동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조가 총회나 집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거나 유인물을 외부에 배포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그럼 한국노총이 민주당과 공동선대본을 차린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노조가 정당 수준의 정치활동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따져 봐야 할 문제다. 앞으로 한국노총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익단체가 선거 때마다 각 정당과 정책연대를 넘어서 공동선대본을 꾸려 공약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묻고 싶다. 노조의 정치활동 영역에 대해 중앙선관위가 좀 더 확실한 구분을 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노총은 “배신의 후과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민주당을 대놓고 압박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노동자 정치’의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하지만 공동선대본에서 내놓은 공약 하나하나는 코로나19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기업들의 숨통을 죌 수 있는 내용들이다. 당장 1년 미만 근속 근로자의 퇴직급여 보장은 중소기업에 고용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기업들에 비용 확대는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강요한다. 또 ILO 협약은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며 재계가 줄곧 반대해왔던 사안이다. 표 욕심에 공동선대본까지 차렸으니 친노조, 반기업 정책의 강도는 어느 때보다 세다.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변화에 모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는 노동계의 코로나19 청구서에 발목이 잡힐지 걱정이다. 겪어보지 못한 변화에 대한 준비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 고비용·저생산성 구조를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 노동계의 반발을 이유로 또 법과 제도 개선을 미룬다면 코로나19 이후 우리 경제는 변화에 뒤처질 것이 뻔하다.
4·15총선을 향한 노동계의 발걸음이 더 빨라지고 있다. 노동계 인사들의 출마는 물론이고 각 지역 여야 후보들도 노동단체와 연대를 맺는다. 2주 동안의 선거운동기간 동안 선거법 담장 위를 넘나드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총선 이후 기업을 옥죄는 입법활동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h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