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신작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취소 및 연기되면서 극장가는 ‘추억 소환’에 한창이다. 빈 상영관들은 추억의 영화와 고전, 걸작을 내걸고 빈 틈을 채우고 있다.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달 영화관 전체 관객 수는 172만명으로 1년 전(1,319만 명)보다 87.7% 급감해 집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3월 매출액도 전년보다 88.2% 줄어든 142억원에 그쳤다. 전국 영화관 513곳 중 약 20.1%가 휴업 중이며, 상반기 개봉 예정 영화 75편(한국영화 27편, 수입사 외화 28편, 할리우드 직배사 작품 20편 등)은 개봉을 미뤘다.
극장가가 유명 배우나 감독의 이름을 내세운 기획전 등 ‘추억 소환’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자, 코로나19 비수기를 뚫고 전체 극장의 재개봉 영화 숫자도 급증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3월에 재개봉된 영화는 총 130편(40회 이상 상영기준)이다. 1월에는 총 42편, 2월에는 26편이 재개봉됐고, 3월에 재개봉 영화는 총 62편이나 됐다. 이는 지난해 1분기 67편의 2배 이상에 달한다.
4년 전 개봉한 ‘라라랜드’는 재개봉 시류를 타고 지난달 예매율 15.5%로, 실시간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라라랜드’ 외에 ‘페임(2009)’, ‘너의 이름은(2017)’,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2017)’ 등이 각각 실시간예매율 5위와 7위, 11위에 올랐다.
이달에도 극장가의 추억소환은 이어진다. CGV는 지난달부터 ‘누군가의 인생 영화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기획전 영화는 ‘동감’, ‘봄날은 간다’, ‘비트’, ‘부당거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아쿠아맨’ 등이다.
홍콩 배우 故장국영에 대한 기획전도 펼쳐진다. 그의 영화 ‘아비정전’, ‘영웅본색’, ‘영웅본색2’, ‘천녀유혼’, ‘종횡사해’, ‘성월동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CGV의 예술영화전문 상영관인 CGV아트하우스에는 오는 8일까지 ‘명불허전 명작전’을 진행한다. ‘마스터’, ‘더헌트’, ‘아메리칸 허슬’, ‘나이트 크롤러’ 등 총 8편이 관객을 맞는다.
롯데시네마는 ‘로씨네 픽(Pick) 장르 명작 기획전’을 시행한다. 장르별 엄선된 영화들을 재개봉하는 것으로, 액션·모험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부터 로맨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애니메이션 ‘미니언즈’, 공포 영화 ‘곤지암’이 선정됐다. 이 외에도 독립·예술영화를 응원하는 ‘다시 꺼내 보고 싶은 한국 영화 기획전’을 통해 지난해 개봉한 ‘벌새’와 ‘메기’를 선보인다.
메가박스는 9일부터 ‘2020 애니플러스 다시, 봄’ 기획전을 시작한다. ‘청춘 돼지는 꿈꾸는 소년의 꿈을 꾸지 않는다’를 비롯해 ‘나츠메 우인장: 세상과 연을 맺다’, ‘주문은 토끼입니까?’ 등 애니메이션 12편을 다시 상영한다.
이러한 극장가들의 기획은 사실 개봉작의 공백을 메우기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3월 개봉 예정작들이 언제 극장가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데다, 2월 개봉작들을 상영관에서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각해낸 대안인 셈이다.
반면 관객들은 지나간 영화들을 재상영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마니아들은 다시 봐도 너무 좋다는 반응을, 이번 기회에 새롭게 과거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이제서야 보게 됐다며 반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는 관객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극장가의 시간여행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