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야, 안 들리니? OO 없어요?”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3학년 90만여명이 사상 처음 온라인 개학에 돌입한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3학년 5반 교실에서는 오전8시10분 원격조회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1교시 수업을 앞두고 담임교사가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을 통해 출석을 확인했지만 2명은 사전 고지 없이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접속 불량인지, 결석인지 출결 체크가 불가능해 담임교사는 수업 이후 전화해 출석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후 실시간 수업은 서울시교육청 지원 및 자체 예산 등으로 지난주까지 총 5대의 무선인터넷(AP) 환경을 구축한 탓에 큰 무리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은 EBS ‘온라인클래스’에 올려진 영상자료의 음성을 들을 수 없어 교사가 영상을 중지한 채 설명을 이어가야 했다.
이처럼 쌍방향 환경에서도 수업자료를 올리고 진도 체크도 할 수 있는 메인 플랫폼 EBS 온라인클래스는 접속 문제로 발목을 잡았다. EBS는 300만명 동시접속을 위해 서버를 증설했지만 이날 수업 개시와 더불어 오전 한때 학습자료 업로드와 로그인 등에서 동시다발적 장애를 보였다. 네트워크 오류로 상당수 학교에서는 녹화 동영상 수업이나 EBS 청취 수업마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
개학과 더불어 학교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막 시작된 원격수업이 학교 간 교육 격차만 부채질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의 온라인 기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부의 ‘일반고 부활’ 약속과는 달리 공교육의 위상이 다시 한번 추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초중고교를 막론하고 일부 사립학교와 특목고·자율고 등에서는 정부의 온라인 개학 선언 이후 첫 월요일에 해당하는 지난 6일부터 사전 개학을 실시하고 원격수업 시간표에 준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AP 환경을 갖추고 대학들처럼 사설 학습관리시스템(LMS)을 구매한 상태라 공식 개학 이전부터 쌍방향 수업 및 동영상 업로드 수업 모두가 가능했다.
대구시에서도 90여개 고교 중 20여개 고교가 EBS 온라인클래스를 대신할 사설 LMS를 구매했다. 학교에 따라서는 전 학생에게 태블릿 기기를 지급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 일반고 중에서도 학교 소유 크롬북 70여대를 학생에게 대여하는 등 수업 준비에 나섰지만 정부가 공교육 투자를 외면하면서 별도의 재정을 더할 수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간 차이는 현격했다.
교육계에서는 고3 1학기의 내신 비율이 크게는 40%에 달하는 점을 감안해 최소한 고3 학생들에 한해서라도 수행평가 등이 가능한 쌍방향 실시간 수업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고교의 AP 보급은 올해 학교당 4개 교실을 기준으로 막 시작되고 초중학교도 학교당 4개 교실에 불과하다. 대당 약 150만원에 불과한 AP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학교 간 유불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AP가 없다면 PPT 등 단면 자료 외 움직이는 동영상은 가정 송출이 어려워 정상 수업이 힘들어진다. 한 고3 자사고생의 학부모는 “이번 대입부터 학교이름 등을 가리는 ‘블라인드 평가’가 시작돼 자사고 학생이 불리할 것이라 우려했는데 수업 여건이 일반고에 비해 좋은 듯하다”며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아 일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일부 일반고들은 쌍방향 수업이 제한되자 강의 녹화 체제로 전환했다. 학교에서 교과목별로 수업 차시에 맞게 수업을 촬영한 뒤 과제를 더한 형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부가 마련한 EBS 온라인교실이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e학습터’는 서버 다운 우려로 배제되기 일쑤였다. 서울의 한 일반고는 이날 사전 녹화한 동영상 기반 수업을 시작하면서도 운영 플랫폼으로 ‘네이버 밴드’를 택했다. 경기도의 다른 학교들도 EBS 다운 시 고교 학사관리 프로그램인 ‘리로스쿨’ 등을 활용하겠다고 각 가정에 사전 안내했다.
이런 여건마저 안 되는 학교들은 EBS 동영상 시청에 과제물을 더한 형태의 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고3 학생 상당수가 이미 해당 강의를 시청했고 동영상 길이도 수업시간과 맞지 않아 상당수 학생이 이를 ‘과제물 수업’이라 인식했다. 한 학생은 “EBS 시청 뒤 과제물을 내라는 게 고지의 전부인데 동영상 접속마저 힘들었다”며 “이런 걸 수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원들도 원격수업이 장기화될 경우 평가 등을 위해 자체 강의 제작을 선호하지만 이를 지지해줄 정부 차원의 기반은 아직 없는 셈이다. 게다가 통합 가이드라인의 부재 속에 충남도교육청의 ‘어서와 충남 온라인학교’와 같은 교육청 기반 단일 동영상 제공 플랫폼도 일부 교육청에서만 제공되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고교 AP 조기 보급, 교육 전용 플랫폼 마련 등 온라인 기반 투자가 필요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투자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이대로 간다면 공교육은 갈수록 도태되고 외면당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희원·김창영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