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사상 처음으로 국제유가를 추종하는 상장지수증권(ETN)에 소비자경보 최고등급인 ‘위험’을 발령했다. 국제유가가 곧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에 개인투자자들이 원유 상품으로 급격하게 몰려가면서 ETN의 ‘괴리율’이 비정상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9일(현지시간) 주요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 여부를 논의하는 가운데 10일은 ‘성 금요일(부활절 전 금요일)’로 미국 금융시장이 휴장해 원유 투자 상품들의 괴리율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9일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에 대해 소비자위험 경보를 알렸다. 금감원이 지난 2012년 6월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한 후 최고등급인 ‘위험’ 경보를 발령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최근 국제유가를 기반으로 한 ETN과 상장지수펀드(ETF)의 괴리율이 급격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괴리율은 시장 가격과 실제 가치의 차이를 뜻하는데, 이 수치가 커졌다는 것은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싸게 사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금감원이 위험 경보를 발령한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괴리율 수치는 90%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추후 시장이 안정되면 시장가가 실제 가격으로 수렴되는데 그만큼 투자자들은 손실을 볼 수 있어 경고성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비정상적인 괴리율은 개인투자자들의 공격적인 투자에서 비롯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지난달 2일부터 이달 8일까지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ETF·ETN을 약 1조1,400억원 규모로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배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레버리지 상품의 순매수 규모는 올해 1월 278억원에서 3월 3,800억원으로 1,266.9%나 증가했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지난달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는 등 바닥을 향하자 곧 반등 기회가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몰려가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급격하게 몰리자 상품의 가격 조정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ETN과 ETF는 실제가와 시장 가격이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유동성공급자(LP)를 두고 있다. LP의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이 지표가치를 기준으로 매도호가나 매수호가를 내면서 상품의 괴리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도록 조절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마구 몰려들자 LP의 호가는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됐고 그 결과 괴리율이 폭등한 것이다.
원유 투자 상품의 괴리율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성 금요일을 맞아 미국 선물시장이 휴장하며 미국 CME GLOBEX(전산장) 역시 함께 문을 닫기 때문이다. LP들은 투자자와 정반대 방향으로 미국 선물시장에서 매수·매도해가며 실시간으로 헤지하고 장내에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이 역할을 일시적으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9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연대체인 ‘OPEC+’의 국제유가 감산 회의가 개최된다는 점은 더욱 우려를 키운다. 회의 결과에 따라 원유 가격의 변동성이 커질 위험이 있지만 그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삼성자산운용은 10일 ‘KODEX WTI 원유선물ETF’의 괴리율이 커질 수 있다고 공시했다.
사정이 심각해지자 한국거래소도 대책을 내놓았다. 거래소는 괴리율 수치가 30%를 넘어서는 등 정상적 가격 형성이 되지 않는 ETN은 오는 13일부터 30분 단위의 ‘단일가 매매’를 적용하기로 했다. 단일가 매매는 일정 시간 동안 호가를 접수해 하나의 가격으로 체결하는 방식을 뜻하는데 이를 통해 과열을 다소 진정시키겠다는 의도다. ETN 매매거래 정지도 무기한으로 연장된다. 현재 괴리율이 5거래일 연속으로 30%를 넘기면 매매거래가 정지되는데 이 조치 이후 거래가 재개됐을 때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경우 정상화될 때까지 매매를 중단시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관계기관 등과 협의해 조속한 시일 내에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완기·양사록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