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패권 다툼의 ‘메인 선수’가 중국과 미국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정세는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일어섬)’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맞붙는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두 대국의 정치체제를 비교 연구하는 서적이 끊임없이 출간돼 온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중국계 여성 과학자 어우양잉즈가 쓴 ‘용과 독수리의 제국’은 이 연구의 시계를 2,000년 전으로 돌려 오늘날의 중국과 미국이 각각 계승한, 동양과 서양의 기원이 된 역사 속 두 제국을 조명한다. 500년 가까이 유라시아 대륙 동쪽의 용과 서쪽의 독수리로 군림했던 진·한 제국과 로마 제국. 용과 독수리는 어떻게 날아올랐고, 또 어떻게 추락했을까.
물리학 박사 출신인 저자는 진·한과 로마 제국의 1,200년의 흥망성쇠를 과학적으로 비교 분석하며 공통의 법칙을 찾아낸다. 두 제국 모두 포용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변방 민족에서 천하의 중심이 됐다는 점이다. 두 나라는 본래 학문이나 기술에서 늘 적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변방 민족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점이 오히려 ‘새로운 사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조성으로 연결됐고, 국가 조직에서도 효율적인 정치기관을 발전시켜 경제·군사적으로 더 유리했던 주변국을 흡수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포용의 대상은 사물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들 제국에서는 군사 정벌-이주민 공동 거주-혈연의 뒤섞임이라는 습속이 발견된다. 이들은 패전국의 민중을 흡수·동화시킴으로써 다양한 민중을 정체성 있는 하나의 민족으로 빚어냈다. 외부 민족과의 결혼에는 불이익이 크지 않았고, 정복한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호적과 권익을 부여했다. 저자는 강한 배타성 탓에 확장·합병·통일을 이루기 어려웠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언급하며 “드넓은 포용이 제국의 확장과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변방에서 중심이 된 두 제국은 변방에 무릎을 꿇었다. 진한(한나라)과 로마제국(서로마)은 각각 이민족인 흉노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했다. 흥미로운 점은 흉노와 게르만 모두 인구나 물자 면에서 한나라와 서로마에 비해 매우 빈약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다른 공통의 법칙이 발견된다. 제국은 밖이 아닌 안으로부터 무너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제국이 외적을 물리칠 힘이 없어 쓰러졌다기보다는 내부의 압제와 부패로 국력을 소진한 끝에 자멸했다고 평가한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이민족이 아닌 오랜 기간 누적된 내부의 분열과 사리사욕, 정치 부패라는 것이다. 천 년 제국은 결국 내부로부터 무너졌지만, 이들의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한은 유가 사상과 통치 철학을 유산으로 남겼고, 로마가 개발한 법치와 기독교는 서구 문명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 되었다.
그러나 평행이론처럼 같은 길을 걷던 두 제국의 끝은 달랐다. 중국은 여러 제국의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도 대제국의 형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서로마 멸망 후 유럽은 다시 통일 제국을 이루지 못했다. 비슷한 국력의 두 제국이 쇠망한 후 왜 유독 로마제국만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더 탐구해야 할 흥미로운 지점’으로 남겨두고 글을 맺는다.
역사·정치·경제·군사를 넘나드는 이야기와 9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순으로 두 제국의 생성과 발전, 소멸 과정을 정치·경제·문화·군사 등으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비교·분석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오늘날 세계정세에 대한 시사점을 남기는 것은 물론, 이들 사이에서 주체적인 관계 정립을 고민해야 하는 대한민국에도 심도 있는 관점을 제시해준다. 4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