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열린우리당 트라우마’를 소환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4대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지지율이 급락했던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사태를 막기 위해 오만을 경계함과 동시에 섣부른 실수가 핵심 개혁과제 완수를 되레 저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 이슈를 포함해 ‘개헌 논의’ ‘윤석열 거취’ 등을 언급하고, 일부 당선자들이 검찰을 겨냥하는 발언 등을 쏟아내자 역풍을 우려해 내부 단속에 심혈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이 대표는 이날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국민이 주신 의석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며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항상 겸허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살피고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한다”며 2004년 17대 총선 압승 이후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했지만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폐지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안, 과거사진상규명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폭발하면서 지지율 급락을 겪은 바 있다. 당 지도부는 전날 비공개회의에서도 열린우리당 때의 실수가 반복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뭐든 하는 민주당’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역시 해단식에서 “모든 강물이 바다에 모이는 것은 바다가 낮게 있기 때문”이라며 “조금이라도 오만·미숙·성급함·혼란을 드러내면 안 된다. 항상 안정되고, 신뢰감과 균형감을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의 이번 발언은 우 공동대표, 그리고 일부 당선자들의 최근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우 공동대표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민의) 이 지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개혁과제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의 국정과제 수행은 물론 현 정권 초기의 개헌 논의도 상기시켜준다”며 “개인적으로 상상의 날개가 돋는다. 보안법 철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또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결국 서초동에 모였던 촛불 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면서 “그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당신, 이제 어찌할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김용민 당선자도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검찰과 언론 유착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감찰해야 한다고 하며 “검찰총장이 권한을 남용해 감찰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남국 당선자도 자신을 둘러싼 ‘성적 비하 팟캐스트 방송’ 논란에 대해 검찰이 선거일인 지난 15일 수사에 착수한 것과 관련해 “일정 부분 선거 개입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도부는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우 공동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지금은 비상경제상황에서 국민들의 생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모으는 게 우선이다. 그 문제는 나중 일이지 지금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여당이 공수처장 임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과 관련해 “공수처법을 만들면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 야당에도 일정한 비토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이를) 적극적으로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