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1887년 최초의 자동차 경주

4륜 증기차로 파리 단독질주

1887년 최초 자동차에서 달렸던 증기차 마르키스.1887년 최초 자동차에서 달렸던 증기차 마르키스.



1887년 4월20일, 프랑스 파리.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렸다. 불로냐 숲과 뇌이(Neuilly)다리 구간을 달린 레이스의 승자는 조르즈 부통(당시 43세). 엔지니어 출신인 부통은 경주 내내 시민들의 환호 속에 달렸다. 결승점에서는 더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으나 샴페인 터트리기 같은 우승 이벤트는 없었다. 당초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를 표방했으나 참가자가 없어 부통 혼자 달린 탓이다. 세계 기록을 인증해주는 기네스북은 이날의 경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경쟁은 없었지만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에서 30.5㎞ 구간을 평균시속 42㎞로 달렸다.’


최초의 경주를 단독 질주한 자동차는 4륜 증기차. 석탄과 나무, 종이조각을 혼합한 연료로 쓰는 증기기관을 달았다. 애초에 경주 대회를 조직한 기획 의도가 이 차를 대중에 알리는 데 있었다. 자동차 마니아인 알베르 드 디옹 백작이 증기 엔진 기술이 뛰어난 부통과 손잡고 1885년부터 생산한 증기자동차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고른 게 경주대회였던 것이다. 부유한 귀족과 기술이 뛰어났던 엔지니어의 결합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이 이름을 합쳐서 설립한 ‘드 디옹 부통 자동차회사’는 20세기 초반 세계최대 메이커로 성장했으니까. 경주 대회는 도약의 디딤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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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경주를 홀로 달린 증기차는 ‘가장 오래되고 비싼 차’로도 손꼽힌다. 디옹 백작이 어머니를 기리는 뜻에서 ‘마르키스(La Marquise·후작부인)’라고 이름 붙인 이 차는 2007년 경매에서 350만달러에 낙찰되더니 2011년에는 460만달러에 팔렸다. 한번 각인된 전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창출한다. 글로벌 메이커들이 굴지의 유명 경주대회에 목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종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상위 성적을 거둬 기술력을 알리고 판매에도 활용하기 위함이다. 자동차 경주가 올림픽과 월드컵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세계 6위권 자동차 생산국으로 떠오른 한국이 아직도 명함조차 못 올리는 분야가 바로 경주용 차 제작이다. 오는 5월 초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전기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E 챔피언십’에서 한국은 전기차 부문의 기술력을 과시할 생각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회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연기된 시한이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고대로부터 경주는 집단 오락인 동시에 거대한 군사훈련이었다. 오늘날 자동차 경주는 눈으로 즐기는 스포츠인 동시에 치열한 첨단기술 경쟁이 벌어지는 격전장이다. 따라 잡자.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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