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던 길리어드의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의 중국 임상이 실패했다는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WHO는 실수로 홈페이지에 잠시 게재된 것이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이 소식에 미국 증시가 휘청거릴 정도로 파장은 컸다.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던 치료제가 출시되지 못하면 일상으로의 복귀가 힘들어 소비위축과 기업경영 악화가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개발사인 길리어드는 “해당 임상이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조기에 종료된 것”이라며 강력히 반박하고 나섰다.
23일(현지시간) WHO 홈페이지에는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거나 혈류에서 병원체의 존재를 감소시키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은 중국 임상시험 보고서 초안이 게재됐다. 렘데시비르는 타미플루를 개발한 미국의 제약사 길리어드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하다가 실패한 항바이러스제다. 지난 1월 미국 내 코로나19 환자에게 투여해 효과를 봤고 이어 한국·미국·중국 등에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길리어드는 중국에서 23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렘데시비르를 코로나19 환자 158명에게 투여한 다음 나머지 위약을 투여한 79명과 병세 진행을 비교했으나 효과를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얻지 못했다. 사망률 역시 렘데시비르 투약 집단 13.9%, 대조군이 12.8%로 비슷했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코로나19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해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임상 결과는 WHO 웹사이트에 게재됐다 곧 내려졌다. 테릭 자사레빅 WHO 대변인은 “연구진이 보내온 초고를 실수로 올렸던 것”이라며 “연구 결과에 대해 후속 리뷰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길리어드는 성명을 내고 대상자가 적어 임상이 조기에 종료돼 결론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같은 이유로 해당 임상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에이미 플러드 길리어드 대변인은 “발병 초기에 치료된 환자들 사이에서 렘데시비르에 대한 잠재적 효과가 제시됐지만 결론을 내기에는 불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임상이 중단될 무렵 나온 미국 임상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6일 미 의학 전문 매체 STAT 뉴스에 따르면 시카고의대 연구진이 코로나19 환자 125명을 대상을 실시한 2단계 임상 임상에서 렘데시비르를 투여받은 환자들이 고열과 호흡기 증세로부터 빠르게 회복됐고 거의 모든 환자가 1주일이 채 안 돼 퇴원했다고 보도했다. 임상에 참여한 환자 중 113명은 중증 환자였다.
렘데시비르는 국내에서도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5월 말까지 임상을 진행해 효과가 입증되면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어떤 약제가 코로나19에 효과적인지는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의견이 없다”면서 “렘데시비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편 렘데시비르의 효과 논란은 국내외 증시에까지 영향을 줬다. 이날 미국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17%(39.44포인트) 상승한 2만3,515.26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0.05%(1.51포인트) 내린 2,797.80,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0.01%(0.63포인트) 하락한 8,494.75에 장을 마감했다.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강세를 보이던 뉴욕 증시는 렘데시비르의 효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급락했다가 장 후반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반박에 하락 폭을 다소 줄이며 장을 마쳤다. 이날 길리어드의 주가는 전날보다 4.3% 급락했다.
국내 증시도 렘데시비르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렘데시비르의 주원료인 뉴클레오시드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파미셀이 12% 이상 하락했으며 신풍제약·한올바이오파마·엑세스바이오·진원생명과학도 2~3%대의 약세를 보였다. 반면 렘데시비르와 치료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다른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는 강세를 보이면서 희비가 교차했다. 또 다른 치료제 후보 물질인 니클로사마이드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대웅테라퓨릭스의 모기업 대웅의 주가는 이날 장중 28.91% 급등했다. /우영탁기자 박성호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