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하게도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대통령의 메모를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지난 20일 조지아주의 경제봉쇄 해제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켐프 주지사는 아마도 대통령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켐프의 발표가 나오기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며 “몇몇 주는 이미 경제활동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는 22일에도 “여러 주들이 정상을 되찾고 있다. 미국은 경제를 다시 열기 시작할 것”이라는 트윗을 내보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백악관에서 열린 백악관 일일 브리핑에서 그는 켐프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바로 이것이 본인이 발표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같은 자리에서 곧바로 부정하는 트럼프의 포퓰리즘 허슬 대선 전략이다. 포퓰리즘은 국가 경영을 책임진 부패한 엘리트층에 맞서 국외자들이 주축이 돼 벌여온 저항운동이다. 우익 포퓰리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진짜 국민’과 외국인·이민자·흑인·유대인 등 소수계를 확실하게 구분한다.
포퓰리즘의 주동세력이 정부에 몸담고 있지 않은 국외자일 때는 이런 전략이 잘 통한다. 하지만 이들이 정부의 주체가 되면 힘겨운 도전이 따라온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국론을 통합하려 하지만 포퓰리즘은 국론 분열과 국민의 불만에서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정한 비상시기가 닥치면 국민의 의식은 깨어난다. 이제 이들은 포퓰리스트 정당의 헛소리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트럼프의 해법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경제 재개에 필요한 단계적 절차를 담은 공중보건 관리 계획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 그 같은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주지사들의 지시를 어기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자들을 두둔하는 식이다. 그의 포퓰리즘 허슬은 꽤 까다로운 춤이다. 켐프 같은 정치인이 쉽사리 따라 밟을 수 있는 스텝이 아니다.
매일 이어지는 대통령의 백악관 브리핑에서 우리는 두 명의 트럼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연설문 원고를 지루하고 단조로운 톤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브리핑을 시작한다. 그러다 가끔 자신의 원고에 코멘트를 해가며 포퓰리스트 아이콘으로서의 면모를 불쑥불쑥 드러내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 사용을 추천한 후 “이건 자발적인 조치”라며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엇갈린 메시지를 내놓는 따위가 좋은 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시키는 그의 이중적 태도는 브리핑 내내 이어진다. 행정부 보건 관계자들이 단상에서 중요한 발언을 하면 느닷없이 대통령이 끼어들어 그들이 전달하려는 내용과 상충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실업률이 치솟는 현 상황에서 그 정도의 허슬 댄스로는 재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의 고민이다. 그는 자신의 지지율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과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오르지 않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9·11 이후 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은 90% 근처까지 치솟았고 수개월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당황한 트럼프는 그의 단골 희생양인 언론과 민주당 우세주인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s) 주지사들, 뉴욕·샌프란시스코 등의 진보주의 세력,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단체들, 그리고 특히 중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지지율 만회를 시도 중이다.
트럼프는 그의 주된 타깃인 이민자들을 또다시 과녁판 앞에 세웠다. 그러나 앞으로 60일간 이민자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이민업무가 이미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상징에 가깝다. 반이민 공약을 실천하겠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며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 던진 신호다.
물론 트럼프가 택한 길이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트럼프는 공동의 적을 몰아내고 국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데 이번 위기를 활용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현재 80%의 지지율을 기록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와 국론이 크게 분열된 상황에서도 10%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상승을 끌어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접근법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출 줄 아는 춤은 포퓰리즘 허슬 하나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다른 춤을 배우는 데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