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여명]금융정책, 과격하고 더 미쳐야

<홍준석 금융부장>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출현처럼

상상 못한 경제위기 이어질 가능성

규제정책으론 복합위기 대응 못해

금융시스템 혁신하는 계기 삼아야




얼마 전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킹덤’ 시즌 1·2를 정주행했다. 급작스럽게 창궐한 역병(좀비)이 도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급기야 조선의 궁궐까지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스토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초토화된 대한민국의 상황과 어찌나 비슷한지 놀라웠다. 보는 내내 유일한 희망인 세자가 어떻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좀비들을 격퇴할지 궁금했는데 상황이 종료된 뒤 더 강력한 무언가의 등장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 등골이 오싹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코로나19가 덮친 작금의 글로벌 경제가 딱 이렇다. 지난 2008년 블랙스완이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트렸는데 불과 10여년 만에 1929년 대공황을 능가하는 전대미문의 쓰나미가 또다시 우리를 강타한 것이다. 언젠가 바이러스가 수그러들면서 경제위기의 불길은 잡히겠지만 과연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더 센 놈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지구촌 어딘가에서 매년 수차례씩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순식간에 글로벌 경제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 특히 더 치명적인 변종 바이러스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환경 대재앙, 통제범위를 넘어서 무차별적으로 풀린 돈의 홍수 등이 몰고 올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파가 언젠가 우리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상황이 이럴진대 처방전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정통적인 금융·재정정책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과거에는 이 정도 유동성이면 충분했다” “우리 기관은 원칙상 기업 지원을 못 한다”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국가기관 저마다 할 말은 있지만 모두 한가한 소리다. 초강력 신종 바이러스에 구닥다리 치료제를 쓰면 약발이 제대로 먹힐까. 당연히 치명상을 이겨낼 만한 ‘과격하고, 미친, 더 미친’ 금융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지금의 규제정책 일변도인 금융체계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출범해 보수정부 10년과 문재인 정부 3년간 변함없던 금융정책·감독의 틀을 이제는 손댈 때가 됐다. 수시로 찾아오는 복합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디지털로 무장한 미래금융에 적합한 ‘뉴 금융컨트롤타워’를 짜야 한다. 업종 간 장벽도 허물고 규제도 과감히 깨야 한다. 소비자보호도 더 공고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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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금융정책과 집행 기능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1998년 외환위기 때처럼 다시 금융감독위원회로 통합하고 기획재정부가 도로 금융산업 정책을 갖자는 것도 아니다. 범정부 차원에서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산업은행 등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축이 최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새로운 금융질서에 맞는 혁신적인 금융체계를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현재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금융체계 개편 관련 개정안은 총 19건으로 다음 달이면 모두 자동 폐기될 운명이다. 감독체계 재설계부터 예산통제, 새마을금고 감독까지 다양하지만 코로나19 쓰나미 같은 대공황급 위기를 내다본 미래형 금융체계 법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21대 총선에서는 금융 시스템 변화에 대한 관심마저 덜했는지 특색 있는 공약도 거의 없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위기는 혁신의 토양”이라고 했다. 실제로 1930년대 대공황 전후로 냉동식품, 항공기 제트엔진, 캔맥주, 나일론, 레이더, 즉석커피 등이 모두 이 시기에 개발됐다. 대공황이 아이러니하게도 혁신이 폭발할 수 있는 시기였던 셈이다. 창조적 발상이 혁신의 원천이듯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국내 금융 시스템의 틀을 부수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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