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를 정확하게 12개를 갖고 있다. 100% 다 갖고 있지 않지만 12개 갖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동의 한 빌라에 은신해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그의 측근은 지난해 1월 한 금융권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김 회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자신의 지인이 김 회장의 뒤를 캐봤는데 다른 사람 명의 등을 통해 상장사 총 12개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
김 회장은 실제로 상장사 12개 오너였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 회장이 실소유했던 상장사로 확인된 곳은 스타모빌리티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2019년 4월에 인수한 것이다. 또한 인수 자금으로는 앞서 그가 수원여객에서 횡령한 자금 162억원 중 일부가 쓰이기도 했다.
김 회장의 측근이 왜 저렇게 믿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앞서 지난4월6일 중앙일보는 김 회장이 2018년8월 T사에 “여러 개의 코스닥 상장사와 1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보유하고 있다”며 CB 보유 내역을 보여주며 접근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김 회장은 “회사 인수 과정에서 급전이 필요하다”, “다른 회사에서 돈이 입금될 테니 다시 나에게 전해달라”는 식으로 T사에 총 78억원의 사기 피해를 줬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CB 보유 내역 등을 측근에게도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참조 기사 ▶[단독]중앙지검도 ‘라임 김 회장’에 칼 뺐다···“CB담보 대출로 사기행각”]
'라임 살릴 회장님'으로 등장한 김봉현 |
더군다나 김 회장은 녹취록에 나온 계획대로 한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고 재향군인회 상조회도 인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러한 계획은 이미 틀어진 상태였다. 김 회장은 수원여객 횡령 사건으로 지난 1월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되자 도피한 상태였던 것.[참조 기사 ▶[단독] ‘라임 살릴 회장님’ 라임 연루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 발부, 도피 중]
곧이어 그가 스타모빌리티와 향군 상조회에서 연달아 수백억대 횡령을 저질렀다는 혐의가 불거지기도 했다. 특히 그는 라임의 환매 중단 펀드가 스타모빌리티에 투자한 돈을 향군 상조회 인수 자금으로 갖다 쓴 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라임과 관련된 그의 역할이 더 많이 알려졌다. 그의 운전기사가 이종필 라임 부사장에게 아토피약을 갖다주는 등 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라임의 ‘뒷배’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또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 나가 있던 그의 친구 김모 금융감독원 팀장으로부터 라임의 사전 조사서를 받아본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됐다.
그러나 김 회장의 이같은 스캔들은 오히려 독이 된 모양이다. 김 회장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지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검거전담팀을 꾸린 것. 경찰은 한 달에 걸친 추적 끝에 김 회장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특히 김 회장과 함께 은신해 있던 이종필 라임 부사장과 심모 전 신한금융투자 팀장까지도 붙잡는 쾌거를 올렸다.
‘라임 살릴 회장님’으로 등장해 한 달 반에 걸쳐 숱한 의혹을 양산하다 결국 이 부사장과 함께 검거된 김 회장. 그는 어떤 인물이었고, 그간 무엇을 도모했던 것일까. 라임의 ‘전주(돈줄)’ 혹은 ‘뒷배’ 역할을 한 게 맞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토대로 라임과 얽힌 김 회장의 행적을 재구성해봤다.
2019년 1월, 수원여객 탈취 시도 |
당시 수원여객은 스트라이커캐피탈이 2018년3월 라임으로부터 270억원을 대출받아 인수한 뒤 경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라임은 지난해 1월 스트라이커에 이틀 안에 돈을 갚으라고 통보했다. 만기가 됐을 때 돈을 갚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사유들이 있다는 게 근거였다. 스트라이커가 돈을 갚지 못하면 라임이 수원여객 주식을 가져갈 상황이었다.
다만 스트라이커는 이틀 안에 자금을 마련해 대출 상환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 직후 수원여객 법인계좌에서 162억원이 빠져나간 상태임을 발견한다. 이후 스트라이커가 임직원의 이메일 등을 조사한 결과 라임은 수원여객 주식을 김 회장 측에 팔아넘길 계획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김 회장은 다른 주주들의 주식을 추가로 확보한 뒤 다른 자산운용사에 웃돈을 받고 팔기로 계획을 짜놓았다. 김 회장은 이러한 거래의 계약금으로 이 부사장에게 30억원을 미리 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수원여객 자금 162억원을 빼돌려놓은 이유는 스트라이커가 대출 상환에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출금 작업은 김모 수원여객 재무이사가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이사는 라임이 스트라이커에 162억원을 대출해주면서 그 자리에 앉히도록 한 인물이었다. 또 162억원이 건너간 법인들은 김 회장이 보유하고 있거나 관계 있는 곳들이었다.
김 이사는 이 작전이 실패하자 곧바로 해외로 출국했다. 이후 여태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도 사건 직후에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스트라이커 측이 이를 경찰에 제보하면서 출국금지를 당했고, 결국 나가지 못했다.
다만 김 회장은 사건 이후에 잠적하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장사를 인수한 뒤 라임과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주범인 김 재무이사가 해외에 있는 때문에 수사가 진척되지 못하리라 간주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9년 4월, 스타모빌리티 인수 |
이때 인수 자금으로는 앞서 수원여객에서 횡령한 돈이 쓰인 것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은 김 회장이 수원여객 횡령 자금 162억원 중 약 80억원을 인터불스 인수에 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 회장은 40억원만 썼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인터불스를 인수하자마자 곧바로 신사업에 나선다. 아이템은 공유경제와 모빌리티였다. 이때 제주도에서 렌터카 사업을 하는 한 그룹사가 등장한다. 바로 김 회장의 고향 친구인 A씨가 회장으로 있는 회사다. 김 회장은 앞서 측근 앞에서 A씨를 ‘절친’으로 언급하며 “2,000억원으로 총량제(가 적용되는)로 제주도 차(렌터카) 싹 쓸어버리자”는 복안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회장은 인터불스와 A씨 회사와의 인수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명을 스타모빌리티로 바꾼다. 그리고 A씨가 관리하는 5개 렌터카 업체에 영업보증금 명목으로 총 170억원을 지급한다 . 또 A씨의 렌터카 업체 한 곳을 30억원에 인수한다. 또 A씨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실사보증금을 120억원을 법무법인 B사에 맡기기도 한다.[참조 기사 ▶[단독] ‘라임 金회장’ 상장사 망가뜨린 배후엔 제주 렌터카 큰손]
또 김 회장은 동시에 또 다른 상장사인 영인프런티어 인수에 뛰어든다. 지난해 7월 A씨의 회사를 앞세워 최대주주에 올라선 것.
라임은 이같은 김 회장의 사업에 약 1,000억여원의 자금 지원에 나선다. 우선 지난해 4월 포트코리아자산운용을 통해 스타모빌리티의 전환사채(CB) 400억원어치를 인수해준다. 또 CB를 추가로 200억원어치 더 인수하기로 하며, 제주 렌터카업체에도 380억원 규모 펀딩 투자를 계획했다.
또 라임의 이 부사장은 스타모빌리티의 주식을 사들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기준 약 4억원 가치였던 16만주를 보유했던 것. 특히 이 부사장은 지난해 11월까지도 이 회사 주식 5만주 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참조 기사 ▶ [단독] 라임 전 부사장, ‘라임 살릴 회장님’ 회사 주식 사들였다]
다만 김 회장의 신사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7월22일 라임의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쓴 것이 직격타였다. 이 기사 이후 라임에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들어오며 돈줄이 묶였고, 결국 580억원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시점부터 김 회장은 본인의 사업은 제쳐두고 라임 환매 중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참조 기사 ▶6조원 굴리는 헤지펀드 라임…펀드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
2019년 8월, 라임 구명 활동 시작 |
또 김 회장은 외국계 사모펀드사를 라임에 연결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라임의 자산을 인수해가라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이 펀드사와 라임의 거래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김 회장은 라임의 자산을 직접 인수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그는 한 자산운용사와 향군 상조회를 인수해 직접 펀드를 조성하려 했음이 알려졌다. 이는 향군 상조회가 보유한 1,800억원 규모의 회원 예치금을 라임 자산 인수를 위한 펀드 자금으로 동원하려는 복안이었다.
우선 김 회장은 라임의 부동산금융 시행사인 메트로폴리탄을 앞세워 향군 상조회 인수전에 뛰어든다. 다만 한 차례 실패를 맛본다. 당시 인수대금 200억원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향군의 복지사업심의위원회에서 매각안이 부결된 것. 라임과 연관된 업체라는 것이 부결 이유였다.
그러자 김 회장은 직접 컨소시엄을 꾸려 재도전한다. 한 특수목적회사(SPC)를 내세우고는 모 코스닥 상장사 등 세 개 업체와 자신의 페이퍼컴퍼니인 비즈제이홀딩스를 주주사로 구성한 것. 인수대금도 320억원으로 올린다.
이 SPC는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리고 올해 초 상조회 주식매매계약을 맺으면서 인수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이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다만 로비 대상과 방법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김 회장은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2일 25억원을 들여 제이에스자산운용 인수에도 성공한다. 또 김 회장은 이들 회사 인수와 별도로 ‘라임 인수단’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19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라임운용 직원 한 명을 대표이사로 세운 뒤 고문 2명과 감사, 준법감시인, 마케팅·홍보본부, 대체관리본부, 경영지원본부 등으로 인수단을 구성하기로 했다.[참조 기사 ▶[단독]“靑 자문단 사람도 받았다”는 라임인수단 명단 살펴보니]
이런 와중에 김 회장은 이 부사장의 도피까지도 직접 챙긴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서 라임 자금을 투자해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게 됐다. 이 부사장은 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잠적하는 것을 택한다. 그 상황에서 김 회장은 직원들을 시켜 이 부사장의 스타모빌리티 주식을 처분해주고 그에게 아토피 약을 전달하는 등 은신을 이어갈 수 있게 돕는다.
다만 이같은 준비를 마치고도 라임 자산 인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회장 역시 도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 경찰이 김 회장에 대해 수원여객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린 것. 김 회장은 두 차례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잠적했다.
2020년 1월, 잠적 후 회사 연쇄 횡령 |
김 회장은 자신이 실소유한 스타모빌리티에서는 517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가 불거졌다. 사측은 지난해 12월 A씨의 렌트카 회사 인수 계약금으로 나간 200억원과 올해 1월 5개 렌트카 업체 영업보증금으로 나간 125억원, 한 식품회사 인수를 위한 실사보증금으로 나간 192억원을 김 회장이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 200억원은 대부업계 큰손 김모씨가 받아갔으며, 125억원과 192억원은 김 회장의 자금책인 김모 스타모빌리티 사장이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중 192억원은 라임의 환매 중단 펀드에서 스타모빌리티로 건너간 돈이 횡령된 것이어서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라임은 스타모빌리티에게 기존 투자금을 상환하라는 용도로 195억원을 건넸는데, 김 회장은 이를 상조회 인수 자금으로 갖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김 회장이 상조회 인수한 다음에 이 돈을 되갚을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여간 결과적으로 라임은 환매 중단 상태에서 195억원을 추가로 날린 셈이 됐다.[참조 기사 ▶[단독] ‘라임 살릴 회장님’ 라임 돈으로 상조회 인수]
또 제이에스자산운용에선 김 회장이 인수한 직후 15억원이 대여금으로 빠져나갔다가 아직도 되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이러한 횡령 혐의로 김 회장을 고소한 상태다.
2020년 5월, 검찰 조사 개시 |
특히 라임 사태의 핵심인 이 부사장에 대한 김 회장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은 라임 사태가 불거진 뒤 김 회장과 함께 교회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수요예배까지 참석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이처럼 김 회장이 라임 사태에 깊숙이 연루되면서 그의 주변 인물들은 검찰 수사를 받고 줄줄이 구속된 상태다. 그를 수행하던 운전기사는 김 회장의 지시를 받아 수행한 업무에 이 부사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가 적용되어 구속기소됐다. 스타모빌리티에 대한 라임의 투자를 전담한 김모 라임 본부장은 스타모빌리티로부터 골프장 회원권을 받아써 온 가운데 김 회장의 스타모빌리티 자금 횡령을 도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또 김 회장의 고향 친구인 금감원 김 팀장(전 청와대 행정관)은 김 회장으로부터 법인카드 등 향응을 받으면서 금감원에서 라임의 사전 조사서를 빼내 김 회장에게 제공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이제는 김 회장 자신이 검찰 조사를 받을 시간이다. 경기남부청 지수대는 이날 김 회장의 수원여객 횡령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수원지방검찰청에 송치할 예정이다. 앞으로 김 회장은 라임 사태를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조상원 부장검사)에서 집중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남부지검에는 라임 사태뿐만 아니라 김 회장이 횡령한 세 회사의 고소 사건도 배당돼 있다. 검찰이 이처럼 김 회장이 벌여온 일들, 특히 로비 의혹을 얼마나 밝혀낼지가 주목된다.
한편 앞서 김 회장을 ‘상장사 12개 보유한 회장님’으로 여겼던 측근은 몇 달 지나지 않아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만 김 회장은 이번 라임 사태의 중심에 서면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에 버금가는 ‘거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