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함께 나이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요?”
한국 뮤지컬 1세대, 뮤지컬계의 맏언니…. 배우 최정원(사진)의 이름 앞에는 늘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출산하던 해 1년을 빼곤 30년 무대 인생에서 작품을 거른 해가 없다. 쉼 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관객과 호흡하는 동안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20년 넘는 ‘장수 작품’들이 쌓였다. 국내 무대에 오른 지 24년이 지난 ‘브로드웨이42번가’부터 한국 초연 20주년을 맞는 렌트와 시카고(20년), 맘마미아(16년) 등 같은 작품도 매번 새롭고 사랑스럽다는 무대 위의 디바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최정원은 올해 20주년을 맞는 ‘렌트’를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다. 2000년 초연 당시 그는 여자 주인공인 19세 ‘미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올해 무대에는 직접 출연하지 않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와 애정이 있는 작품이다. “1999년 출산 후 1년을 쉬면서 무대에 대한 갈망이 커져 있던 때에 만난 작품이에요.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컸는데 큰 사랑을 받았죠. 렌트는 제게 복귀작 이상의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한국 뮤지컬의 ‘산 증인’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지금은 상상 못 할 에피소드가 많다. 배우들이 프로그램 북을 팔거나 공연 후 무대 철거까지 했던 시절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정원은 “배우들이 다 같이 세트를 만들고 철거도 해서 어디에 어떤 세트가 있고, 조명 라인은 어떤지 같은 무대 매커니즘을 알 수 있었다”며 “입었던 의상을 직접 집에 가져가 빨았다는 이야기까지 하면 후배들에게 ‘꼰대’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웃었다.
사실 최정원은 활동 기간에 비해 작품 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출연작 중 상당수가 10년 넘게 이어져 온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여러 시즌에 걸쳐 출연한 작품이 많다 보니 공연 팬들 사이에서는 ‘뮤지컬 OOO 공무원’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최정원은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제작사가 캐스팅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운 좋게 몇몇 작품과 긴 시간 함께 해올 수 있었다”며 “익숙한 작품인데도 매 시즌 캐스팅되면 ‘프러포즈를 받은 듯’ 심장이 뛴다”고 했다. 이런 꾸준함을 위해 최정원은 매일 근력 운동과 수영,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며 철저한 관리하고 있다.
작품과 함께 나이 먹는다는 것은 천생 배우인 그에게 축복이다. ‘시카고’에서는 젊고 섹시한 죄수 록시 하트와 록시의 라이벌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중년의 죄수 벨마 캘리를 모두 연기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앙상블 애니로 시작해 인기 오페라 가수 도로시 브록 역할까지 맡았다. “아이도 낳고 나이도 먹다 보니 60, 70세가 또 기다려지네요. 세상에 좋은 작품과 그 작품 속 멋진 배역이 얼마나 많은데요.”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건넸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생생한 무대는 계속 사랑받을 겁니다. 두려워 말고 꾸준히 꿈을 향해 걸어가세요.” 최정원은 오는 6월과 7월에 국내 초연 24주년을 맞은 ‘브로드웨이42번가’의 도로시 역, 한국에 첫선을 보이는 ‘제이미’의 마가렛 역으로 잇따라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