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에서는 우선적으로 구해야 할 생명을 선택해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가 우리나라에 중계될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지닌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난파선 사건을 소개한다. 지난 1884년 6월 더들리 선장은 세 명의 선원들과 함께 영국 플리머스항에서 호주 시드니항으로 요트선 ‘미뇨네트(Mignonette)’를 타고 여행을 떠났으나 희망봉 근방에 이르러 난파한다. 그는 무 통조림 두 개만 가지고 선원들과 함께 작은 구명정을 타게 된다. 더들리 선장과 세 명의 선원들은 그 후 며칠 동안 통조림을 균등히 나눠 먹으며 견뎠으나 이들은 갈증과 기아로 인해 죽음이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오랜 항해 경험을 통해 아무리 갈증이 나도 바닷물은 절대 마셔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들 중 고아 출신인 17세 소년 선원은 바닷물을 마시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조난 후 19일이 지나면서 갈증과 기아가 극에 달했을 때 실신하지 않은 세 선원 중 두 명은 주머니칼로 그 소년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후 그들은 그 소년의 피와 살로 구조될 때까지 5일을 더 버틸 수 있었다. 소년을 죽이는 것에 찬성한 두 사람은 본인들은 돌봐야 할 아내와 자식이 있어 살아야 하며 소년은 이미 아픈 상태였고 돌봐야 할 가족이 없는 고아라는 이유로 살인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영국에 돌아온 후 그들은 구명정에서 일어난 일을 경찰에 자수하고 살인을 고백했다. 국가적 관심 속에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최종 판결은 국민들의 동정 여론에 힘입어 사형이 아닌 감형이 가능한 징역형으로 선고됐고 6개월 후 이들은 석방됐다. 이 사건은 지금도 영미법에서 중요한 판례로 알려져 있다. 샌델은 이 딜레마를 통해 고아 소년의 죽음이라는 희생으로 얻은 이익을 계산하는 공리주의적 판단과 어떠한 상황에서건 살인이라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법의 일관성을 논하고 있다. 한편으로 도덕성은 전적으로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달렸다는 시각과 결과가 전부는 아니며 그 행위과정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언급하고 있다.
올해 3월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폭증으로 인해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의 의료체계는 사실상 붕괴 사태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이 지역 방역 담당관이 중환자실 입원치료 기회를 80세 이상의 환자에게는 주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병상과 의료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선착순 진료가 아닌 완치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선택적으로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끔찍한 상황이다. 현대판 ‘미뇨네트’ 선상의 살인에 비유될 수도 있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이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의료 시스템과 위기대응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의료체계의 붕괴로 살릴 환자를 선택해야 하는 비극을 맞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