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통과가 임박하자 이를 막기 위한 인터넷업계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효과도 없는 법안이 졸속 처리될 전망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무엇보다 ‘n번방 방지법’이 사건의 통로가 된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은 전혀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개정안이 해외 사업자에 대한 제재가 미치지 못하고 실효성이 반감되냐”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동의를 표명한 바 있다.
사실 국내에 관련 법안이 도입돼도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를 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는 물론 이용자들 대다수의 관측이다. n번방 방지법’을 비웃는 텔레그램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 “인터넷 IP는 앗아가도 자유는 앗아가지 못한다” |
텔레그램은 메시지 암호화와 대화 삭제 등 보안 기능을 앞세워 고객을 모았다. 최근 공식 발표한 월 이용자만 4억 명이다. 텔레그램은 대화에 참여한 사용자 기기에만 메시지 내용이 저장되는 ‘비밀 대화’ 기능을 지원한다.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을 활용해 송신자와 수신자만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상대방 기기에 남은 메시지까지 자유롭게 삭제가능하다. 지난 2014년 상금 30만 달러(약 3억원)를 걸고 텔레그램 암호 체계를 해독하는 해킹 콘테스트를 열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다.
텔레그램은 광고 등을 통해 돈을 벌지도 않는다. 보안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창업자 중 한명인 파벨 두로프의 사비로 운영된다. 텔레그램 측은 운영자금이 부족하게 될 경우 수익사업이 아닌 기부를 통해 충당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위치도 미궁이다. 독일에서 설립한 후 영국,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소재지를 수시로 옮겨왔다. 경찰 역시 미국 수사당국과 협력해 위치를 추적 중이다.
━ ‘자유 위한 소통창구’ |
이처럼 철저한 보안으로 국내에서는 ‘사이버 망명지’로 주목을 받았다.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사찰’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2014년에는 텔레그램 가입 열풍이 불었다. 2016년에는 국가정보원의 감청 권한을 확대하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텔레그램으로 ‘메신저 망명’이 반복됐다.
━ “범죄자와 테러리스트의 집” |
━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 |
‘잠입수사’가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구태언 변호사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착취물 유통 범죄는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언더커버 인베스티게이션(비밀수사)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4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수사를 위해 잠입수사 기법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아동 성범죄가 수면 위로 올라온 시점에서 범죄자에 대한 일벌 백계와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국가의 지속적인 단속과 법 집행을 통한 예방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지현·김성태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