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기념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의 내용을 제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시대를 대비해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의료·교육·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며 도로·교통 등 노후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스마트화하는 사업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사업이 아니라 미래 한국 경제를 위한 디지털 기술에 초점을 맞춘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와 같은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도록 대학의 자율권 보장과 노동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훨씬 전부터 현 정부는 지금 뉴딜에 들어 있는 미래 산업 발전 전략에 착수했다. 출범 첫해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인공지능(AI)·자율주행·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 육성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장병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지난해 말 대정부 권고문을 발표했는데 획일적인 노동·교육 제도의 혁신 등 언론 표현대로 정부 정책과 ‘결이 다른’ 내용이 많다. 이를 수용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진정한 신산업 태생의 토양이 만들어진다.
둘째, 규제 혁신이다. 정부의 뉴딜 정책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들은 한결같이 규제 완화가 수반돼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고 학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규제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다만 실행 의지가 문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절실히 입증되고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우리나라 원격의료 규제가 풀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차관은 정부가 추진하는 비대면 의료서비스는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와 원격 모니터링 상담 등 시범사업을 늘리는 데 국한된다고 선을 긋고,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문 대통령도 뉴딜 추진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공공성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를 충분히 지키겠다고 했는데 당연한 표현 같지만 미래를 선도하는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려면 보다 진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민간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뉴딜 인프라의 핵심인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은 민간 회사가 하는 일이다. SK텔레콤·LG유플러스는 물론 KT도 민간이 주주인 회사다. 5G 휴대폰 및 통신설비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민간 회사이며 이들은 외국 회사와 기술 및 마케팅 경쟁을 한다. 정부가 공공기관 구매확대 등을 통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는 있으나 직접 투자계획을 마련하거나 제품기술을 개발할 수는 없다. 정부의 역할은 한국 회사들이 미래를 선도하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넷째, 정부 재정으로 이뤄지는 뉴딜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불합리한 사업을 걸러내고 재정 낭비를 줄이는 효과를 거둬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도 인정받았는데 최근 면제 범위가 확대돼 실효성이 없어지고 있다. 뉴딜로 하려는 도시·산업단지·도로 등 국가기간시설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은 노후화된 시설 안전을 고려해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개별사업의 세부계획이나 적정사업 규모를 산정하기 위해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하는 절차가 있어야만 한다.
끝으로 뉴딜은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한 단기 대책이 아니라 미래 한국의 국가 비전을 마련하는 일임을 유념해야 한다. 부처 실무팀에서 몇 주 만에 후다닥 만들기보다 국책연구원 등의 중지를 모아 추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