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고난과 기아의 돌림병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 코로나發 대량 실직 사태에도

공화, 의보·실업수당 연장 반대

식비 지원도 축소...생존위기 몰려

정치논리로 경제적 희생 강요 안돼




코로나19가 근로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는 가운데 경제가 공식 피해 집계조차 하기 힘들 만큼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부분적인 자료만 보아도 상황은 심각하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수천 만 명의 노동자들이 불가항력의 외적 요인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 같은 대량실직사태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고, 노동시장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최소한 몇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공화당은 실업수당 지급연장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공화당의 중진인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실업수당 연장이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의 발언은 “근로자들이 죽기 전까지”로 읽힌다.)

공화당은 대다수의 실직자들이 실업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원래 소득의 극히 일부분만 보전받는 상황이 되길 원한다. 노동 연령대에 속한 대다수 미국인들이 고용주를 통해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자리 손실은 무보험자 급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충격을 완화해줄 유일한 요소는 오바마케어로 알려진 ‘어포더블 케어 액트’(Affordable Care Act) 밖에 없다. 물론 오바마 케어가 신규 실직자들 모두에게 보험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밀려난 근로자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대체보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도 오바마케어에 대한 법원의 위헌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행정부가 이렇다 할 대안조차 제시하지 못함에도 “오바마케어 의료제의 폐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분명히 밝혔다.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오바마케어를 폐기할 경우 기존 질환을 지닌 미국인들에 대한 보호장치 역시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오바마케어가 폐기되면 보험사들은 코로나19 환자들의 보험가입을 거절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도 밥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12세 이하의 자녀를 둔 가정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41%가 충분한 음식을 살 경제적 여력이 없다고 답했다. 지역사회 곳곳에 문을 연 푸드뱅크 앞에는 식자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1마일 이상의 장사진을 치곤 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여전히 푸드 스탬프 지급 대상을 축소하려 든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식비지원액을 올리자는 제안에 맹렬히 반대한다.

뉴스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의료 분야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얼마나 부실하게 대응했는지 파악했을 것이다. 그들은 수 주 동안 팬데믹 상황을 부인하는데 급급했고, 적절한 진단 검사를 하는데 실패했다. 사실상 코로나19 확산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재가동하려는 시도는 사망자를 늘릴 뿐 아니라, 중앙정부에 등 떠밀려 경제활동 재개를 허용한 주 정부들이 코로나19의 기세에 눌려 다시 봉쇄체제로 돌아설 경우 경제적 측면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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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지금에서야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공화당이 얼마나 잔인하게 대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엄청난 자연재해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이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데 동참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들은 가난하고 불운한 사람들을 벌주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팬데믹으로 빈곤층 지원확대에 반대하는 그들이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민층 지원축소 주장은 마치 좀비처럼 계속 어슬렁대고 있다. 공화당은 푸드스탬프와 실업수당 지출이 예산적자를 늘린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공화당은 예산적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난 2017년 막대한 재정적자를 동반한 감세법안을 통과시킨 후 한데 어울려 환호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감세로 말미암아 큰 폭으로 늘어난 적자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설사 백번을 양보한다 해도 대기업에 대출과 대출보증 형식으로 수 천억 달러를 제공하면서 푸드스탬프 경비를 문제 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보다 더 한심한 주장도 있다. 푸드스탬프와 실업수당이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을 해친다는 불평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는 없다. 게다가 지금은 근로자들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평소대로 직장에 나가 일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가적 재난으로 피폐해진 미국인들의 어려운 삶에 공화당이 비상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의 우파들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봉쇄를 풀고,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가 불러올 인명피해를 감수하기로 사실상 의견을 모았다. 이 노선을 택한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줄이려는 시도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들의 계획을 방애하는 장애물로 간주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우리가 한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면, 많은 미국인들이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대단히 좋은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권자들에게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라는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정치적 전략으로 삼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정부가 시행하는 좋은 일을 유권자들이 지켜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이미 부적절한 위기관리로 수만 명의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트럼프와 그의 일당이 또 다른 수천 만 명에게 불필요한 경제적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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