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원유 ETN 투자장벽 높인다]ETN계좌 10배 폭증...가격 괴리율 낮춰 시장교란 차단

■금융위 '시장건전화 방안' 발표

실제값 두배이상 추종 레버리지

위탁증거금 100% 징수 의무화

투자자 사전 온라인 교육 이수도

증권사엔 '괴리율 폭증' 방지임무

기존투자자 소급적용 여부는 논란




지난달 국내 주식시장에서 상장지수펀드(ETF) 활동계좌 수는 79만9,000개를 기록했다. 지난 1월 26만8,000개에서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상장지수채권(ETN) 활동계좌는 2만8,000개에서 23만8,000개로 무려 열 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처럼 국내 주식시장에서 ETF·ETN 계좌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는 국제유가가 급락한 영향이 크다. 3월 유가가 폭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계좌 개설만으로 원유 선물 거래가 가능한 ETN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원유 개미’의 투자수요 폭증은 오히려 시장을 교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의 집중 매수가 이어지면서 기초자산과 실제 시장 가격 간 괴리율이 수백%까지 치솟았다. 괴리율이 높아지면 발행사는 증권을 추가 상장해 가격을 실제 가치에 가깝게 조정한다. 괴리율이 높을 때 가격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상품을 매수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리율보다는 유가 하락을 기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막무가내식 베팅’은 계속됐다. 지난해 62억원에 불과한 원유 ETP(ETF·ETN)의 하루 평균 거래액이 이달에는 2,667억원으로 3,556%나 증가했으며 전체 거래대금 중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도 52.3%에서 77.1%로 늘었다.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진입 장벽을 높인 이유다.

◇예탁금 도입, 빚투 금지…‘묻지 마 투자’ 차단=금융위원회가 17일 발표한 ‘ETF·ETN 시장 건전화 방안’은 ‘ETF·ETN 시장에서 개인들의 ‘묻지 마 투자’를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가격의 두 배 이상을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ETN은 고위험 투자이지만 투자자가 증권 계좌만 개설하면 주식 시장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려는 개인은 기본적으로 예탁금 1,000만원을 준비해야 한다. 현금이나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거래’는 레버리지 ETF·ETN 투자 시에는 금지되며 위탁증거금 100% 징수도 의무화한다. 또한 투자자들의 사전 온라인 교육 이수 의무도 포함됐다. 나아가 당국은 오는 3·4분기 중 ETF·ETN의 위험도에 따라 상품을 분류해 차별화된 상장 심사, 투자자 진입규제 등 투자자 보호 장치를 도입할 계획이다.


괴리율 급변 시 투자자의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우선 지표가치 하락 시 상품이 ‘동전주’가 돼 발생하는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ETN의 액면병합을 허용한다. 또한 현재 거래소는 괴리율이 30%를 초과하는 상품에 대해 매매방법 변경 및 거래정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번 개선안에서는 해당 요건을 6% 혹은 12%까지 대폭 낮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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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에 ‘괴리율 폭증’ 방지 의무 부과=투자자뿐 아니라 상품을 발행하고 판매하는 증권·운용사의 책임도 커진다. 그간 ETN 발행증권사(LP)는 투자 수요가 급증해 ETN 보유물량이 소진돼도 보유수량에 대한 의무가 없어 소극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앞으로 LP는 상장증권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유동성 공급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원유 ETN’ 사태에서처럼 수요가 몰리는데도 보유물량이 없어 괴리율 폭증을 수수방관하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다. LP 평가 항목에는 최소 보유물량 (20%) 의무 준수 여부를 추가하고 의무 위반 종목 수, 괴리율 정도, 위반일수 등 의무 위반에 비례해 신규 ETN 상품의 출시 기간을 1~6개월 내로 제한한다.

‘일괄신고서 한도소진 전 신고서 제출 금지’를 허용하고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일’도 기존 15일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단축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존 ETN에 적용되는 투자자 보호 규제를 예외적으로 면제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자칫 성장 중인 국내 ETF·ETN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ETN이 코스닥150·KRX300 등 국내 주요 지수를 추종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투자자의 해외 주식 직접투자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이 가능하도록 기초지수 구성 요건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 투자자에게도 소급 적용 가능한가=금융위가 이날 내놓은 예탁금 도입, 신용거래 금지 등의 강경 조치는 전문 투자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기존 투자자에 대해서는 일정 유예 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하지만 투자 경험이 충분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예탁금을 완화·면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기존 투자자에게도 신규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적용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전산상의 부담과 투자자 보호 등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업계와 지속적으로 상의하며 어느 정도 소급 적용할지를 탄력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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