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중국 간 이재용 "과거에 잡히면 미래 없다"

코로나 뚫고 '글로벌 경영' 재개

시안 반도체 사업장 찾아 격려

1915A01 이재용 부회장 최근 경영행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글로벌 현장경영을 재개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중국 출장은 지난 1월 삼성전자 브라질 공장 방문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했던 글로벌 경영행보를 100여일 만에 재개한 것이다. ★관련기사 3면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중국을 방문한 글로벌 주요 기업인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한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입국 후 14일간 의무격리를 면제하는 입국절차 간소화(신속통로)를 도입하자 전격적으로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이날 시안 공장에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반도체 사업 영향 및 대책을 논의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아울러 ‘반도체굴기’에 나서며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를 추격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경쟁력도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과거에 발목이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반도체 생산기지로 낸드플래시를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150억달러(약 18조5,000억원)를 추가 투자해 시안 반도체 2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반도체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정부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은 가운데 이뤄져 관심이 쏠린다. 중국과 미국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포기할 수 없는 양대 핵심시장이다.

이 부회장은 6일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함께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뒤 전방위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국민사과 일주일 만인 13일에는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만나 차세대 전기차배터리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또 중국 출장길이 다시 열리자 전날인 17일 중국으로 출국해 이날 시안 반도체 공장을 둘러봤다.

이재용(앞줄 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낸드플래시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앞줄 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낸드플래시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아 최근 삼성전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 절박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 2·4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밖으로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거대 내수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의 ‘반도체굴기’가 성과를 내며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중국 정부가 반도체 패권전쟁을 벌이면서 그 사이에 낀 삼성전자의 입장은 난처한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도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과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등 사법 리스크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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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시간이 없다”는 이 부회장의 발언은 삼성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도 위기극복이 쉽지 않은 상황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단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향 및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시안 공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시안 공장은 코로나19가 중국 전역을 휩쓸 때도 차질 없이 정상 가동됐다. 코로나19로 시안 2공장 증설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삼성전자는 증설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해 지난 3월 2공장 1단계 투자 출하식을 열었다. 지난달에는 2공장 증설에 필요한 기술진 200여명을 전세기로 파견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시안 공장 방문은 중국의 반도체굴기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가 중국의 반도체굴기에 맞서는 최전선이다.

중국 양쯔메모리(YMTC)는 지난달 128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르면 올해 말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국내에서 128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간 만큼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가 1년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에서는 현재 90단대 낸드플래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셀을 얼마나 높이 쌓아 데이터 저장용량을 늘릴 수 있는지가 핵심 경쟁력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중국의 반도체굴기 성과가 과장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와 높은 불량품 비율 등을 고려할 때 중국 기업들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제품의 실제 양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의 이번 시안 공장 방문은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뤄져 관심이 쏠린다.

미국 상무부는 외국 반도체 업체가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활용해 만든 반도체를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수출규제 개정안을 오는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강화된 수출규제의 1차 타깃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지만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올 1·4분기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9조8,371억원으로 전체 해외 매출의 28.3%를 차지하며, 중국 매출의 대부분은 반도체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이 시안 공장을 찾은 것은 중국은 삼성전자의 중요한 시장이며 중국에서 반도체 관련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중국 측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안 공장은 지난해 10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직접 찾아 투자 확대를 독려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리 총리는 “삼성을 포함한 각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이 계속해서 중국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시안 2공장 증설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 1·2위 고객인 중국과 미국이 반도체 문제로 일대 혈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어느 쪽 편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삼성전자로서는 중국과 미국 양쪽에서 반도체 투자를 늘리며 혹시 모를 불이익을 예방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의 이번 방문은 이달 6일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며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언급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 1위인 삼성전자는 초격차 기술로 경쟁업체를 따돌리는 한편 신사업인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도 2030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반도체 생산 기지인 시안 공장을 직접 찾아 메모리반도체 1위 수성의 의지를 다진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경제가 확대된데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며 낸드플래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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