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88 공채 시대'열린 靑경호처...文대통령의 특별한 격려 의미는

靑 경호실장 노태우 정부때까지 군인 출신이 장악

참여정부 염상국, 文 정부 주영훈 내부출신 발탁이나

'공채 출신'은 유연상이 처음... 1988년 공채 시대 열려

내부 공채에 힘실어준 文 대통령의 이례적 격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불린 주영훈 전 청와대 경호처장은 1984년 경호관에 임용됐다. 이후 참여정부 때 경호실 ‘가족부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관저를 경호했고,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봉하마을 경호팀장을 맡아 노 전 대통령 내외를 보좌했다.

경호실 출신으로 시작해 처장까지 올랐으나 엄밀히 말해 ‘공채 출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 처장이 경호관에 임용될 당시만 해도 경호처는 선택 받은 사람들끼리의 ‘제한 경쟁’을 통해 경호관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제대를 앞둔 군 장교나 경찰 출신 중 우수한 인재들이 대통령 경호관을 권유 받았다고 한다. 이들끼리 모여 ‘경호실 입사시험’이 치뤄졌다. 이같은 채용제도가 확 바뀐 것이 1988년이다. 노태우 정부 때 처음으로 일반인까지 지원자격을 넓혀 공채 1기를 뽑았고, 이후 2년 단위로 공채를 진행했다. 민주화 시기를 지나며 이같은 공채 제도는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지금은 1년 단위로 일반 회사처럼 필기시험·체력검정·면접 등의 과정을 거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


바로 그 공채 출신 가운데 첫 경호처 수장이 19일 문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다.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이다. 유 처장은 공채 3기로 1992년에 경호관에 임용됐다. 문 대통령은 20일 경호처장 임명장 수여식을 언론에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내부 승진으로 공채 출신이 처음으로 경호처장을 맡은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경호처 직원들도 모두 좋아할 것”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배우자와 함께 임명장 수여식을 찾은 유 처장도 “경호처 직원들의 사기가 충천하다”면서 “임무 수행에 한 치의 허점도 없도록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대통령 경호처장 임명식이 공개적으로 진행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이 ‘공채 출신·내부 승진 경호처장’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줬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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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 무인경호경비차량이 설치돼고 있다. 대통령경호처와 현대로템이 공동으로 운용하는 무인경호경비차량은 주야간 정찰이 가능한 360도 카메라 영상을 5G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상황실로 전달한다./연합뉴스지난해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 무인경호경비차량이 설치돼고 있다. 대통령경호처와 현대로템이 공동으로 운용하는 무인경호경비차량은 주야간 정찰이 가능한 360도 카메라 영상을 5G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상황실로 전달한다./연합뉴스


사실 청와대 경호실장(현 경호처장) 자리는 노태우 정부 때까지만 해도 군 출신들의 독무대 였다. 박정희 정권 때는 홍종철·박종규·차지철씨가,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정동호·장세동·안현태 씨가 차례로 경호실장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탄 인물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도 익히 알려진 차지철 실장이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비상시엔 수도방위사령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졌다고 한다. 결국 10·26 사태로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노태우 정권 때도 이현우·최석림 등 군 출신들이 경호실장에 올랐다. 경호실장이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시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쓰러뜨린 10.26사태의 총성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년 5월 18일 육사생도의 5.16지지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박종규소령, 박정희 소장, 차지철 대위/연합뉴스박정희 전 대통령을 쓰러뜨린 10.26사태의 총성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년 5월 18일 육사생도의 5.16지지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박종규소령, 박정희 소장, 차지철 대위/연합뉴스


‘군 출신’ 경호실장 고리를 처음으로 끊은 것은 이른바 문민정부 탄생을 주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당시 경호실장으로 오른 인물이 ‘불사조’로 불리는 박상범 씨다.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 사태 당시 궁정동 안가에서 총알을 네발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경호관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군의 정치 개입 차단 등을 위해 내부 출신인 동시에 상징성이 큰 박 씨를 경호실장에 앉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2003년 경찰청장 출신 김세욱 경호실장을 임명해 군 출신과 거리를 뒀다. 후임으로도 내부에서 염상국 실장을 발탁했다. 염 실장 역시 경호실 출신 발탁이었으나 1982년에 임용돼 열린 ‘열린 공채’ 세대로는 볼 수 없다. 이어 이명박 정부는 군 출신 김인종, 경찰청장 출신 어청수씨를 차례로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을 경호실장에 앉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부산 북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북항 재개발 현황을 점검한 뒤 환호하는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부산 북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북항 재개발 현황을 점검한 뒤 환호하는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경호실의 역사가 이처럼 파란만장 했던 만큼 이번 ‘공채 출신 경호처장’ 에 대한 경호처 내부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경호처의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조직에 대한 배려를 해주신 것이고 신뢰의 표시로 본다”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업무수행에 있어서 더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역시 유 처장이 ‘조직 혁신’에 나설 것에 방점을 찍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 향후 내부조직의 혁신과 환경 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경호제도 및 경호문화 정착에 기여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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