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두더지

이면우

비 갠 아침 밭두둑 올려붙이는 바로 그 앞에


두더지 저도 팟팟팟 밭고랑 세우며 땅 속을 간다

꼭 꼬마 트랙터가 땅 속 마을을 질주하는 듯하다

야, 이게 약이 된다는데 하며 삽날 치켜들다 금방 내렸다


땅 아래 살아 있다는 게 저처럼 분명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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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뒷발 팔랑개비처럼 놀려 제 앞길 뚫어나가는 열정에

문득 유쾌해졌던 거다 그리고 언젠가 깜깜한 데서 내 손 툭 치며

요놈의 두더지 가만 못 있어 하던 아내 말이 귓전을 치고 와

앞산 울리도록 한번 웃어젖혔다.

내 그럴 줄 알았소. 우린 앞이 안 보이지만 다른 감각이 뛰어나다우. 자랑 같지만 나는 기척만으로도 그 사람 인품과 배짱을 안다우. 당신 삽날로 밭고랑 올려붙이는 소리가 고봉밥 다독이는 새색시 숟가락 같더이다. 삽날에 끊어지는 풀뿌리나 지렁이 허리에도 움찔하더이다. 그런 당신이 나를 약으로 쓴다고? 내가 당신을 잡아다 굴 파는 머슴 삼아도 답답할 뻔 했수. 우핫핫! 당신이 앞산 울리도록 허세부리며 웃을 때 나도 웃었소. 아내한테 얻어맞던 그 두더지 손등, 과연 우리 족속을 닮아 용감하오. 사랑은 눈멀수록 정확히 제 짝 찾아가는 법이요. 그게 생명의 릴레이 아니겠수. <시인 반칠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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