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명품거리, 삼성동 한복판에 그린 ‘동양화’=샤넬·루이비통·구찌 등 해외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한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이곳에는 화려한 상품으로 장식된 쇼윈도 외에도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각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낸 매장 건물들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자존심과 역량을 쏟아부은 거대한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시선을 빼앗는 아주 작은 건물 하나가 있다. 건축면적 272.65㎡, 높이 15층에 불과한 ‘몽유도원도 타워’다.
한국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지난 2018년 문을 연 몽유도원도 타워는 한국적인 미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이 디자이너의 비전이 반영됐다. 안견의 산수화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받아 건물 외부에 흰색 세라믹 패널로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표현했다. 볼륨감 넘치는 외관이 정면에서는 물론 옆에서 봤을 때도 쉽게 눈에 띈다. 빛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건물이다.
전위적인 외관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실용적이고 알차다는 인상이다. 인도에서 계단을 몇 개 내려가야 하는 몽유도원도의 입구는 사실 지하 1층이다. 단차를 적절하게 활용해 지하 1층을 마치 지상층처럼 활용했다. 이상봉 디자이너의 컬렉션 공간으로 활용하는 지하 1층, 지상 2층 외 나머지는 근린생활시설과 오피스텔로 활용되고 있다. 몽유도원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옥탑층은 복층 구조의 내부 공간과 소나무 한 그루가 조각상처럼 서 있는 중정, 루프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다. 남산과 한강, 멀리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뷰를 자랑한다. 패션쇼와 음악회, 영화 감상, 파티룸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곳이다.
몽유도원도에서 멀지 않은 삼성동에 운생동이 설계한 또 다른 건물이 있다. 디자인 기업 ‘지엘어소시에이츠(GL associates)’의 사옥인 ‘밤부타워’다. 건축면적 196.46㎡로 몽유도원도보다 작은 밤부타워는 가늘고 긴 외관에 대나무 같은 마디를 형상화했다.
밤부타워에는 카페와 전시공간, 미니 상영관, 공유 오피스 등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렇듯 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내부 공간을 외부의 ‘마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지엘어소시에이츠가 사옥으로 사용하는 14~16층에는 옥상까지 관통하는 중정이 있다. 밤부타워의 심장인 이 중정에는 대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우내 죽은 듯 있던 대나무 숲은 5월 들어 하루에 한 뼘이 자랄 만큼 생동하고 있다.
애초에 온실로 활용하려 했던 옥상은 현재 한국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 활용 중이다. 선정릉이 내려다보이는 이 카페에는 14층에서부터 자라난 대나무를 비롯해 여러 식물과 물고기가 헤엄치는 작은 연못이 있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신내 콤팩트시티에서 ‘새로운 도시’ 선뵌다=운생동은 공공 건축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서두에 소개한 신내 콤팩트시티 외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모한 고덕·강일지구 1블록 사업자로도 선정된 바 있다. 운생동은 고덕·강일지구 1블록에 고밀도·중밀도·저밀도의 주택이 어우러진 새로운 도시를 제안했다. 고층 아파트라도 1층은 마치 단독주택처럼 설계해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것이 이 설계안의 특징이다.
신내 콤팩트시티에는 주택에 흔히 사용하지 않는 ‘모듈러 방식’의 건축도 검토하고 있다. 공장에서 건물 프레임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공장에서 제작하면 구조 안정성이나 강도 등을 유지하면서도 무게는 절반으로 줄일 수 있으며 설계 정확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만들고 건물을 올리는 만큼 하중을 줄이는 공법은 신내 콤팩트시티 건축의 핵심이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는 건축과 구조, 도시계획이 모두 별도의 전문가에 의해 따로 이뤄졌지만 신내 콤팩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들이 협업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러한 협업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많은 공공 건축물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공공 건축마저도 합리적이기만 한 공간을 추구하면 창의적인 건축물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라며 “최저 비용으로 똑같은 미술관·도서관을 양산하는 것보다는 상황별로 탄력적인 건축비를 적용해 혁신적인 공공 건축물을 만들려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