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건축과 도시]산등성이·대나무 형상화...강남 한복판에 '한폭 동양화' 빌딩

■몽유도원도타워·밤부타워

안견 산수화서 영감 '몽유도원도타워'

옥탑층 중정엔 조각 같은 소나무 심어

가늘고 긴 대나무 같은 '밤부타워'

마디로 나누듯 다양한 공간 설계 눈길

운생동 건축사사무소의 끊임없는 도전

'신내 콤팩트시티' 모듈러식 건축 시도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도로 위 주택 ‘신내 콤팩트시티’는 북부간선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조성하고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와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을 짓는 사업이다. 지난해 진행한 신내 콤팩트시티 국제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곳은 ‘포스코 A&C 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으로 이번 ‘건축과 도시’에서 소개할 ‘운생동 건축사사무소’가 포함돼 있다. 장윤규 국민대 교수와 신창훈 건축가 두 사람이 공동으로 이끄는 운생동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설계로 인정받는 건축사 사무소다. 서울의 신내 콤팩트시티 추진 계획을 들었을 때 신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적임자고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렇듯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운생동이 선보여온 건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산수화에서 착안해 산등성이 같은 입체적인 외관이 돋보이는 몽유도원도 타워. /사진제공=ⓒSergio pirrone산수화에서 착안해 산등성이 같은 입체적인 외관이 돋보이는 몽유도원도 타워. /사진제공=ⓒSergio pirrone





몽유도원도 옥탑층에 위치한 중정. 소나무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직접 골랐다. /사진제공=ⓒSergio pirrone몽유도원도 옥탑층에 위치한 중정. 소나무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직접 골랐다. /사진제공=ⓒSergio pirrone


실내에서 루프톱으로 연결된 통로. 천장에 투명한 패널을 설치하고 물을 담아 물그림자가 통로에 비친다. /사진제공=ⓒ김재윤실내에서 루프톱으로 연결된 통로. 천장에 투명한 패널을 설치하고 물을 담아 물그림자가 통로에 비친다. /사진제공=ⓒ김재윤


◇청담동 명품거리, 삼성동 한복판에 그린 ‘동양화’
=샤넬·루이비통·구찌 등 해외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한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이곳에는 화려한 상품으로 장식된 쇼윈도 외에도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각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낸 매장 건물들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자존심과 역량을 쏟아부은 거대한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시선을 빼앗는 아주 작은 건물 하나가 있다. 건축면적 272.65㎡, 높이 15층에 불과한 ‘몽유도원도 타워’다.


한국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지난 2018년 문을 연 몽유도원도 타워는 한국적인 미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이 디자이너의 비전이 반영됐다. 안견의 산수화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받아 건물 외부에 흰색 세라믹 패널로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표현했다. 볼륨감 넘치는 외관이 정면에서는 물론 옆에서 봤을 때도 쉽게 눈에 띈다. 빛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건물이다.

전위적인 외관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실용적이고 알차다는 인상이다. 인도에서 계단을 몇 개 내려가야 하는 몽유도원도의 입구는 사실 지하 1층이다. 단차를 적절하게 활용해 지하 1층을 마치 지상층처럼 활용했다. 이상봉 디자이너의 컬렉션 공간으로 활용하는 지하 1층, 지상 2층 외 나머지는 근린생활시설과 오피스텔로 활용되고 있다. 몽유도원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옥탑층은 복층 구조의 내부 공간과 소나무 한 그루가 조각상처럼 서 있는 중정, 루프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다. 남산과 한강, 멀리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뷰를 자랑한다. 패션쇼와 음악회, 영화 감상, 파티룸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곳이다.


몽유도원도에서 멀지 않은 삼성동에 운생동이 설계한 또 다른 건물이 있다. 디자인 기업 ‘지엘어소시에이츠(GL associates)’의 사옥인 ‘밤부타워’다. 건축면적 196.46㎡로 몽유도원도보다 작은 밤부타워는 가늘고 긴 외관에 대나무 같은 마디를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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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부타워에는 카페와 전시공간, 미니 상영관, 공유 오피스 등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렇듯 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내부 공간을 외부의 ‘마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지엘어소시에이츠가 사옥으로 사용하는 14~16층에는 옥상까지 관통하는 중정이 있다. 밤부타워의 심장인 이 중정에는 대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우내 죽은 듯 있던 대나무 숲은 5월 들어 하루에 한 뼘이 자랄 만큼 생동하고 있다.

애초에 온실로 활용하려 했던 옥상은 현재 한국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 활용 중이다. 선정릉이 내려다보이는 이 카페에는 14층에서부터 자라난 대나무를 비롯해 여러 식물과 물고기가 헤엄치는 작은 연못이 있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대나무에서 본뜬 외관 설계로 건물 내에 입주한 다양한 공간을 표현해낸 밤부타워 전경. /사진제공=ⓒSergio pirrone대나무에서 본뜬 외관 설계로 건물 내에 입주한 다양한 공간을 표현해낸 밤부타워 전경. /사진제공=ⓒSergio pirrone




외부 공간과 연결되는 중정. 밤부타워의 상징인 대나무를 심어 작은 숲을 조성했다. /사진제공=ⓒSergio pirrone외부 공간과 연결되는 중정. 밤부타워의 상징인 대나무를 심어 작은 숲을 조성했다. /사진제공=ⓒSergio pirrone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 옥상 전경. 14층에서 시작된 대나무를 옥상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제공=운생동건축사사무소카페로 사용되고 있는 옥상 전경. 14층에서 시작된 대나무를 옥상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제공=운생동건축사사무소


◇신내 콤팩트시티에서 ‘새로운 도시’ 선뵌다
=운생동은 공공 건축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서두에 소개한 신내 콤팩트시티 외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모한 고덕·강일지구 1블록 사업자로도 선정된 바 있다. 운생동은 고덕·강일지구 1블록에 고밀도·중밀도·저밀도의 주택이 어우러진 새로운 도시를 제안했다. 고층 아파트라도 1층은 마치 단독주택처럼 설계해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것이 이 설계안의 특징이다.

신내 콤팩트시티에는 주택에 흔히 사용하지 않는 ‘모듈러 방식’의 건축도 검토하고 있다. 공장에서 건물 프레임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공장에서 제작하면 구조 안정성이나 강도 등을 유지하면서도 무게는 절반으로 줄일 수 있으며 설계 정확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도로 위에 인공 대지를 만들고 건물을 올리는 만큼 하중을 줄이는 공법은 신내 콤팩트시티 건축의 핵심이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는 건축과 구조, 도시계획이 모두 별도의 전문가에 의해 따로 이뤄졌지만 신내 콤팩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들이 협업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러한 협업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많은 공공 건축물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공공 건축마저도 합리적이기만 한 공간을 추구하면 창의적인 건축물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라며 “최저 비용으로 똑같은 미술관·도서관을 양산하는 것보다는 상황별로 탄력적인 건축비를 적용해 혁신적인 공공 건축물을 만들려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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