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등이 부동산을 남에게 맡겨 납부를 피한 종합부동산세 액수만도 3년간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기획재정부가 이 문제를 지난 2014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처하지 않았다며 개선방안을 찾으라고 권고했다. 앞으로는 신탁부동산 보유자 가운데 상당수가 종부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감사원이 4일 공개한 ‘부동산 임대소득 등 세원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신탁부동산을 종부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 데 따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걷지 못한 종부세 액수가 1,037억원(연평균 346억원)에 달했다. 종부세 과세 대상자도 7,117명 감소했다. 신탁부동산이란 부동산 보유자가 수익이나 관리를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긴 부동산을 말한다.
신탁부동산이 종부세 대상에서 대거 빠진 것은 2014년 지방세법 개정으로 납세의무자가 부동산 보유자에서 수탁자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당시 법 개정 취지는 재산세 체납분을 효율적으로 걷기 위함이었으나 이를 통해 2014~2018년 5년간 보전한 세액은 560억원(연평균 112억원)에 불과했다. 반면 다주택자 등은 남에게 부동산을 신탁하는 것만으로도 과세표준을 줄여 종부세 대상에서 벗어날 길이 열렸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재부는 처음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2015년 관계부처들과 협의했으나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까지 추가 협의를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부동산 소유자 사이에 종부세 부담의 형평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행정안전부·국세청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합법적 절세수단까지 막히나 |
감사원이 ‘부동산 임대소득 등 세원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A씨와 비슷한 사유로 종부세를 피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무려 7,117명에 달했다. 2014년 지방세법 제107조 개정으로 신탁회사 등 수탁자들이 부동산 실소유자를 대신해 재산세를 내온 탓이다. 현 종합부동산세법은 주택공시가격을 합산한 금액이 6억원, 토지의 공시가격을 합한 금액이 5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을 납세대상자로 본다.
감사원의 이 같은 지적에 기획재정부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재산세는 행정안전부가 관할하는 지방세로 분류되는 만큼 물건별로 세금을 부과하지만 종부세는 전체 보유 부동산을 합해 사람별로 누진 과세하는 만큼 세금 산정 방식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학계 역시 신탁부동산 종부세 과세 문제는 기재부 혼자 풀 수 있는 고차방정식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위탁자와 수탁자·수익자 등 3자 중 누구에게 어떤 세목으로 과세할지를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신탁 세제와 관련해 종부세만 봐서는 안 되고 소득세와 부가세 등도 종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종부세 부과 시 신탁부동산과 그렇지 않은 부동산을 구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신탁부동산의 경우에는 위탁자를 납세의무자로 한다는 조항을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합법적인 절세 수단’이 막히게 됐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애초부터 정부가 절세 방법을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 문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특히 이번 결정이 소급 적용될지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관리신탁의 자산 규모(1월 기준)는 2018년 6조1,906억원, 2019년 7조8,102억원, 2020년 8조2,581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새롭게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초고가 주택 보유자로 추정되는 만큼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 등 고가주택 밀집 지역의 부동산 가격 하락세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시장에서 하나의 절세 방안으로 여겨지던 방법이 규제를 받게 된 만큼 어느 정도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