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유럽에 잇따른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피폐해진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약 500만명의 이탈리아이민자들이 미국에 도착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희망을 실현해나갔다. 그러나 콧수염을 기르고 2대8 가르마에 헤어 오일로 단장한 키 작은 이탈리아인들은 딱 봐도 외지인이었다. 게다가 덩치 큰 게르만족 계열의 영국인과 독일인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 미국에 도착한 이탈리아인들은 가무잡잡한 낯빛 탓에 백인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였으니 따가운 시선과 눈칫밥은 그들의 몫이었다.
가족 관계가 유독 끈끈했던 이탈리아인들은 멸시와 비난을 극복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주말마다 한 자리에 모여 ‘엄마’가 해 준 집밥을 먹으며 희망의 의지를 되살렸다. 대표적인 공간이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다. 리틀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널리 퍼진 피자와 파스타 등이 점차 익숙해면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이곳에서 오랜 전통 속에서 숙성된 고향의 지중해식 깊은 맛을 미국식으로 재현해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피자와 미트볼이 대표적이다. 담백함이 생명인 이탈리아 음식에 풍성하면서도 입맛을 자극하는 풍부한 재료를 얹어 세대와 인종을 넘어 만국 공통의 먹거리로 탄생한 것이다.
미국식으로 재현한 이탈리아 가정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 있다. 지난해 오픈한 ‘에토레(Ettore)’가 그곳. 강남 반포 신세계 센트럴시티 내 미식가들의 정거장이라는 컨셉으로 마련한 파미에스테이션 1층에 위치한 에토레는 신세계 그룹 계열사인 신세계센트럴시티 F&B팀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이탈리아 엄마의 손 맛을 재현하기 위해 해외 유명 미슐랭 레스토랑 그룹의 컨설팅을 받아 메뉴를 선정하고 유학파 셰프들을 모셔왔다. 미국 CIA, 존슨앤웨일즈(Johnson and Wales) 등 해외 유명 조리학교에서 공부한 후 현지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셰프들이다. 셰프들은 주기적으로 미국에서 연수를 받으며 제 맛을 에토레에서 선보이고 있다.
고단했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힐링푸드가 되었던 풍성한 엄마의 식탁을 구현하기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있다. 그렇다고 지중해식 고유의 건강한 맛을 잃지는 않았다. 새우, 관자 오징어 등 해산물과 이탈리안 드레싱으로 상큼하게 즐길 수 있는 샐러드를 시작으로 뽀모도로 소스와 빵을 곁들인 미트볼, 매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푸실리면에 문어와 소골수로 감칠맛을 낸 문어본메로 그리고 오징어먹물 반죽에 랍스터와 새우살을 채워 넣은 랍스터 또르뗄리니 등이 준비되어있다.
후식도 놓칠 수가 없다. 버터 대신 올리브오일을 쓴 케익에 레몬크림을 곁들인 미국식 이탈리안 디저트는 깔끔한 에스프레소 혹은 홍차가 제격이다. 이탈리아 국기의 3색을 내세운 세 가지 맛 젤라토는 눈으로 봐선 바닐라, 딸기, 녹차 맛이 떠오르겠지만 의외의 재료가 들어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 부분은 매장에서 맛보는 사람들에게 미각을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기회로 남겨놓는다.
직장인 혹은 동호회 등 소모임을 위한 와인모임을 하기에도 제격인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적정 비용에 따라 음식과 와인을 준비해주는 형식이며 예약은 필수다. 신세계센트럴시티 관계자는 “미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미국식 이탈리아 가정식을 제대로 살렸다면서 재방문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족 모임은 물론 회사동료, 취미모임 등 소규모 모임을 멋지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 마지막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음식 비평가가 쥐가 나왔다는 문제적 식당의 견습생 요리사 랭귀니가 만든 라따뚜이를 맛보며 고향과 엄마가 만들어준 집밥을 떠올리며 푸근하게 비평을 쓴 덕분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이탈리아 음식의 본연의 맛으로 건강한 미각을 살리면서도 팍팍했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엄마의 풍성한 세련되고 깔끔하면서도 풍성하기까지 해 세대를 초월해 누구나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제격이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