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해 경제·사회 청사진인 ‘정부 업무보고’에 적힌 ‘노점경제’ 목표가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부정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장 위주의 경제정책이 ‘공산당 통제 강화’ 이념에 가로막힌 상황이다. 노점경제를 적극 지원했던 리커창 총리의 입지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이 노점경제를 두고 시끄럽다. 8일 소식통에 따르면 관영 중국중앙(CC)TV는 최근 논평에서 “노점경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맹목적으로 추구할 경우 뜻하는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시 당 기관지인 베이징일보도 “노점경제가 짝퉁판매·소음발생·교통마비 등 각종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베이징시 도시관리국은 노점상이 도로를 무단 점거하는 불법행위 등을 철저하게 단속해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노점경제가 중국 관리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 적시돼 있다는 점이다. 겨우 열흘 전인 지난달 28일 전국대표대회에서 확정된 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이동노점경영 장소를 합리적으로 설정한다’는 문장으로 노점경제를 장려할 것임을 밝혔다. 이 문장은 앞서 22일 발표된 업무보고 원안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는 전인대 기간 중 수정됐다는 의미다.
중국 경제를 책임진 리 총리는 더 적극적이었다. 그는 28일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 서부지역 모 도시의 노점경제 시행 상황을 언급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10만명의 일자리를 해결했다”고 극찬했다.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일자리와 소득을 노점경제가 마련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중국의 빈곤을 지적하며 “6억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1,000위안으로는 중급도시(인구 50만~100만명)의 집세조차 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이달 1일 산둥성 옌타이시를 시찰하면서도 “노점경제가 중요한 일자리의 근원”이라며 “첨단산업과 함께 중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 내에서는 노점경제가 순식간에 확대됐다. 전국 도시 곳곳에 노점구역이 생겼으며 노점상을 새로 여는 중국인도 늘어났다. 리 총리가 직접 찾은 산둥성은 물론 장시성 등 지방정부는 이제껏 단속 대상이었던 노점상을 합법화하면서 오히려 시설과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노점상이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불법이었고 이의 활성화가 중국이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아름다운 중국’이나 ‘문명사회’ 건설 추진의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수도 베이징시가 ‘총대’를 메고 단속에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베이징시 당서기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차이치다.
외신들은 리 총리의 목소리 키우기를 시 주석이 불편해한다고 전했다. 우선 리 총리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빈곤 문제가 그동안 절대빈곤을 없애고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시 주석의 자신감에 생채기를 냈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정권 출범 때 경제이념으로 시진핑의 ‘공산당의 통제 강화 및 공급 측 구조개혁’과 리커창의 ‘시장경제 우선’을 두고 경쟁했는데 결국 시진핑의 노선이 채택됐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시장주의 노선을 다시 부른 셈이다.
반중 성향의 홍콩 빈과일보는 “시 주석이 내놓은 ‘당의 통제’ 주장에 대해 리 총리는 상대적으로 ‘자유경제’를 강조해왔는데 노점경제를 계기로 이런 차이가 재연된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