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생산 늘려? 말아?"…독감백신 딜레마

코로나 겹쳐 올해 접종 수요 30~40% 증가 예상되지만

가격 통제로 낮은 수익성·재고 부담에 생산계획 못정해

"정부가 폐기비용 일부 지원 등 백신개발 환경 만들어야"

올 가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수요가 덩달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번질 경우 독감 치명률도 높아지는 만큼 백신 접종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백신업계는 매출 상승 기대에 쾌재를 부를 법 하지만 정부의 가격 통제와 재고 부담에 오히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

1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2020~2021년) 독감 백신 수요는 지난해(2019~2020년) 약 2,000만 도즈(1도즈는 1명 접종량)보다 30~40%가량 증가한 2,700~3,000만 도즈로 예상된다. 우선 정부가 무료로 예방접종을 지원하는 대상이 기존 초등학생 이하와 임산부, 만 65세 이상 노인에서 고등학생 이하까지로 확대된다. 필수예방접종 대상자만 약 235만명이 증가하는 셈이다. 여기에 65세 미만 중년층 등 일반 성인들도 대거 접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115A16 국내 접종 독감백신 양



예년과는 다른 독감 백신 접종 ‘붐’이 예상되는 이유는 코로나 19 때문이다. 코로나19와 독감 환자들이 뒤섞여 병원으로 몰려든다면 지난 3월 대구처럼 병상이 부족해 집에서 입원날짜만 기다리다 숨지는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매년 전 세계에서 인플루엔자(독감)로 64만명이 사망하는데 독감 시즌과 코로나19가 겹치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호적인 시장 환경을 만났는데도 GC녹십자(006280)와 SK바이오사이언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사노피파스퇴르 등 국내외 백신 제조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정부가 가격을 정하는 필수예방접종은 올해 1인당 9,000원 안팎으로 시장 공급가격(1만4,000~1만5,000원)의 60~70%에 그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필수예방접종은 지난해까지는 독감 3개 종류를 예방하는 3가 백신이지만 올해는 유행 예상 4개종(A형 2종, B형 2종)을 모두 막을 수 있는 4가 백신으로 바뀐다. 백신은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넣어 배양하는데 3가 백신은 달걀 1개가 들어간다. 4가 백신은 이보다 달걀이 0.3개 더 들어간다. 업계가 “생산비는 25% 올랐는데 백신 가격은 5% 올랐다”고 말하는 이유다. 필수 예방접종 때 매겨진 가격은 일반 접종 비용과도 상관관계가 크기 때문에 업계 입장에서는 백신을 더 많이 팔아도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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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A16 올해 유행 예정 독감


매년 유행하는 독감 종류가 달라져 그 해 못 쓴 백신은 모두 폐기한다는 점도 업계의 고민이다. 백신은 바이러스 배양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업체에 따라 제조기간이 2~3개월에서 6개월에 이른다. 많이 만들어두면 폐기해야 하고, 적게 만들면 수요에 제 때 대응할 수 없다. 통상 10%가량 여유물량을 더 만들었지만, 올해처럼 코로나 19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판단이 쉽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전히 올해 생산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며 “국민 수요를 고려해 정부가 재고에 대한 부담을 일부 덜어준다면 업계가 안심하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고민이 코로나 19 백신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문제다. 가격 통제가 엄격하고 재고 비용까지 떠안는 환경에서 백신 개발의 동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백신을 새로 만드는데는 수백억원의 연구개발(R&D) 비용이 들어간다”며 “백신 개발과 충분한 생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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