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의 내년 예산 요구액 규모가 550조원에 육박해 ‘초슈퍼예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기초연금·국민취업지원제도 등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198조원으로 36%를 차지한다. 심의 과정에서 한국판 뉴딜이 추가되고 관행대로 국회에서 증액을 요청하면 내년 예산은 55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거침없는 확장재정 속에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세수절벽의 여파로 재정건전성에는 비상등이 들어왔다.
브레이크 없는 확장재정.. 작년 9%, 올해 9%, 내년도 6%↑ |
특히 정부는 내년도 경기상황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수립 등 요구안 접수 이후의 정책여건 변화에 따른 추가 요구도 반영할 예정이라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도 정부 부처가 요구한 2020년 예산은 498조7,000억원이었으나 국회에서 512조3,000억원으로 통과됐다. 기재부는 부처 요구안을 토대로 2021년도 정부 예산안을 마련해 오는 9월3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복지·고용 예산 200조원 육박… “코로나로 지출 더 늘어날 수도” |
무엇보다 보건·복지 예산의 대부분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의무지출)이어서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컨트롤할 수도 없다. 총지출 대비 의무지출 비중은 50% 안팎에 이른다. 이들 예산을 줄이려면 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세입 기반이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지출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어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국회를 거치면서 증액 요구는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건·복지 분야 중에서도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예산이 올해 13조2,000억원에서 약 15조원으로 불어난다. 내년부터 소득 하위 70% 기준만 맞으면 일괄적으로 월 30만원을 지급하도록 제도가 확대되는데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수급자 자체가 늘어난 결과다. 지난 2018년 예산이 11조5,000억원이었는데 불과 2년 만에 단일 사업 예산이 4조원 가까이 불어나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예산 역시 올해 14조원에서 내년 15조원 정도로 증가한다. 만 7세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매월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은 내년 요구 예산이 2조2,000억원 규모로 올해보다 소폭 축소된다. 저출산으로 지급 대상자가 줄어든 영향이다.
여기에 내년에 처음 시행되는 국민취업지원제도(실업부조)에 약 1조2,000억원이 들어가고 올해 15조5,000억원이 투입됐던 고용보험기금도 최근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 급증과 보장성 강화 등으로 적잖은 재정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보험료 체계를 손보지 않는 한 고보기금 부담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그린뉴딜이 내년부터 본격 추진됨에 따라 환경 예산 요구액은 올해보다 7.1% 많은 9조7,000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했다. 이 밖에 교육 70조3,000억원, 국방 53조2,000억원, 산업·중기·에너지 26조6,000억원 등이 요구됐다. 교육 예산 중에서는 내년부터 고교 무상교육 전면 시행에 따라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새롭게 투입된다.
"세입은 그대로인데 지출만 늘려"…국가채무 곧 1,000조원 넘길 듯 |
부처 요구안보다 오히려 최종 예산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올해 본예산은 512조3,000억원이지만 당초 부처 요구액은 이보다 적은 498조7,000억원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도 경기상황과 재정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면서도 “요구안 접수 이후 정책여건 변화에 따른 추가 요구도 반영하겠다”며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다.
악화된 세수여건은 재정 건전성 훼손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고령화와 복지 지출 확대, 경기부양 목적으로 돈 쓸 데는 많아지는데 버는 돈이 적으니 수지는 악화되는 게 당연하다. 올해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한 기업 수익성 악화는 고스란히 내년도 법인세수 감소로 이어진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20조원 가까이 세수 펑크(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 추정)가 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스스로도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국세수입을 올해보다 4.4% 늘어난 304조9,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세외·기금 수입까지 더한 총재정수입은 505조6,000억원으로, 부처 요구액 542조9,000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최병호 부산대 교수는 “예전에는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 다른 분야의 지출 증가를 눌러왔지만 지금은 복지는 복지대로 늘고 다른 분야의 예산도 불어나고 있다”면서 “내년 세수가 지출 증가만큼 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적자재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황정원·한재영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