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대북 문제에 관한 논의를 위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가운데 “오래 전 계획된 일정”이라는 청와대 주장과 달리 그의 파견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서 결정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이 본부장의 방미는 오래 전 계획한 출장일 뿐”이라는 청와대 설명을 두고 “코로나19 이후 대면 외교가 없던 상황에서 어떻게 오래 전에 출장을 계획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계획된 시점이) 한두 달 전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다소 모호한 답변이었지만 그 시점을 한 달 이내로도, 두 달보다 더 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답이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앞서 지난 18일 이도훈 본부장이 미국에 사실상 대북 문제를 풀 특사로 파견된 게 아니냐는 추정에 “미국 특사로 간 게 아니라 오래 전 계획된 일정에 따라 방문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지난 3월17일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협상대사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방문 이후 3개월 동안 외교부 고위급 인사의 방미가 전혀 없던 상황에서 이보다 더 오래 전부터 이 본부장 미국 파견을 계획했을 가능성엔 의문 부호가 붙는다.
당시 정 대사는 귀국 후 14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 이 본부장도 한국에 들어오면 지침에 따라 2주간 자가 격리를 하게 된다. 방위비 협상이라는 중대사를 두고도 3개월 동안 추가적인 대면 접촉을 하지 않았던 데다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 위험까지 높아진 상황에서 통상적인 논의를 위해 ‘오래 전부터’ 한미 접촉을 계획했다는 설명은 언뜻 믿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외교부는 정 대사의 방미 이후부터 코로나19를 이유로 대면 외교 자체를 3개월 간 전면 중단했다가 이달 중순 김건 차관보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을 통해 비로소 이를 재개했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9일 한미일 협의라인에 있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 본부장이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지고 있다며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양해하도록 미국을 설득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도의 진위를 떠나 이 본부장이 미국으로 떠나게 된 주된 이유가 애초부터 대북 문제가 맞았다면 청와대와 정부는 일러도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첫 경고를 보낸 6월4일 이후 이 본부장 파견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래 전 계획”이라는 청와대 설명과는 더 멀어지게 되는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요미우리 신문 보도 내용과 관련해서는 “협의 내용은 물론 일정도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