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의내부의사각의내부의사각의내부의사각 의 내부의사각./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 의 사각 이 난 원.’
건축가 겸 시인 이상(1910~1937)이 1932년에 잡지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시(詩) ‘건축무한육면각체’ 중 ‘새로운 상점’은 띄어쓰기도 무시한 채 이렇게 시작된다. 제18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작가인 전소정은 이 시에서 개인전 제목 ‘새로운 상점’을 빌려왔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한창인 전시 또한 철제 구조물이 이루는 사각의 틀 안에 또 다른 사각 구조물이 이어진다. 이따금씩 직선은 반원이 이루는 아치와 연결되니, 공간의 경험을 시어(詩語)로 표현한 것이 조형작품으로 구현됐다. 이상은 당시 경성에 새로이 들어선 미츠코시 백화점을 배경으로 이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며 갑자기 근대화를 겪었을 이상을 떠올리며 전 작가는 “1930년대에 새롭게 생겨난 자본주의 상업공간을 통해 이상이 바라본 도시풍경에 대한 경이와 놀라움, 분노가 교차했을 것 같다”면서 “시 속에 백화점으로 여길만한 사각형, 입방체의 몇몇 장치를 포착했다”고 말한다.
수수께끼같은 시인 이상만큼이나 전소정의 작품도 여러 겹 들춰가며 봐야할 요소가 있다. 상영 중인 영상작품 ‘절망하고 탄생하라’가 그렇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를 위한 부상으로 프랑스 파리 레지던시에서 지난해 5~8월 머물었던 작가는 프랑스의 백화점을 보며 ‘모조 근대’를 발견했다. 프랑스식을 본 딴 일본식 백화점, 다시 이것이 근대 경성으로 이어진 역사적 부조리의 상황을 ‘새로운 상점’이 보여주는 셈이다. 이들 도시의 백화점들과 함께 영상에는 영상에서는 파리의 지붕 위를 달리고, 서울의 좁은 골목의 벽과 벽 사이로 뛰어내리는 인물과 그 시선이 등장한다. ‘파쿠르’라 불리는 이 행위는 수평으로 이동하는 게 상식인 도시를 중력에 거역해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영상의 배경음악은 하프와 거문고 소리다. 작가는 “수평으로 현이 놓인 국악기 가야금, 수직의 줄을 가진 하프가 이루는 불협화음의 현대음악”이라고 설명했다. 수평·수직을 교차하게 한 장치들을 관객은 오감으로 경험하는 셈이다. 이는 시공간의 배경이 어긋남에도 동서양이 교차했던 근대기를 은유하는 듯하며, 이를 통해 서구식 근대화를 급작스레 맞닥뜨린 동양의 지식인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근대이고, 진보라 믿었던 환상을 좇는” 우리의 현실까지 반추하는 것은 물론이다.
군데군데 놓인 조각 작품이 눈에 밟힌다. 미츠코시 백화점의 옥상에 올라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겨드랑이가 가려워짐을 느낀 소설(이상의 ‘날개’) 속 주인공이 끓어넘치는 도시 속에서 녹아내린 것 아닐까. 상상을 자극하는 작품들은 ‘기관(organ)’이라는 큰 제목 아래 눈,무릎 등의 부제가 붙어있다. 작가는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돌 형태의 조각들은 자연물과 인공물,합리적인것과 비 합리적인것, 전근대적인것과 현대적인것이 뒤섞인 상태”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 모양이 영상작품 속 인왕산과 흡사하다가도 찌그러진 지구를 보는 듯하기도 해 현재 겪고 있는 팬데믹의 상황까지 더듬게 한다. 전시는 7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