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시향과 함께 4개월 만의 정기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새로운 일상, 거리두기 원칙에 따라 기존 대규모 편성 프로그램을 50명 내외로 연주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재편했고, 해외에서 입국해야 하는 지휘자와 협연자를 대신해 국내에 체류 중인 음악감독과 성악가가 무대에 섰다. 그간 국내에서 잘 연주되지 않았던 시벨리우스 관현악곡과 말러의 교향곡 편곡 연주를 통해 익숙했던 포르티시모보다 섬세한 피아니시모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묻혀 있던 보석 같은 레퍼토리들의 매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거리두기 좌석제로 관객 수는 이전보다 확연히 줄었지만, “편성을 줄이니 음악의 에센스가 들린다”고 격려해준 소중한 관객들과의 오랜만의 해후는 가슴 뭉클해지는 체험이었다.
대면 공연을 결정한 뒤에도 상황 악화에 대비한 비대면 공연을 함께 준비하며 마지막까지 스스로 되물었다. ‘관객을 만나기 위한 최선의 준비를 했는가?’ 대답은 “그렇다”였다. ‘이토록 복잡한 준비가 꼭 필요한 것이었나?’ 대답은 역시 “그렇다”였다. 음악의 질 만큼이나, 안전이라는 가치에 양보는 없기 때문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더 많이 우려하고 더 많은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최대한의 예방 조치를 다하고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새로운 일상의 의미는, 예술적 측면은 물론 방역적, 시장적 측면 모두에 적용된다. 결코 예전과 같을 수는 없기에, 새로운 기획과 마케팅, 운영 정책의 전환이 수반된다.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문득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1910년 연설 중 한 대목을 떠올린다. “비평하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한 선수가 실수를 했다고 지적하거나 이러저러하게 하면 더 낫겠다고 훈수나 두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사람은 경기장에 서 있는 투사입니다. 그는 얼굴에 흙먼지와 땀과 피를 잔뜩 묻혀가며 용감하게 싸웁니다. 실책을 범하고 거듭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하지만 경기장의 투사는 자신의 노력으로 경기를 치릅니다. 그는 위대한 열정이 무엇이고 위대한 헌신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는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온몸을 던집니다. 잘 될 경우 그는 큰 성취감을 맛봅니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그는 용기 있는 실패를 하는 겁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리더십 전문가인 브레네 브라운은,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들의 대담함이란 “실패를 기꺼이 각오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 했다. 결국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의 골자는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일 것이다. 필자 역시 불확실한 일상 앞에서 오늘도 겸허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