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미군이 일본 민간인 남성 60여명을 데려갔으며 이중 일부가 참전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참전한 일본인 중 북한 인민군을 죽인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미국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된 미군 극비 문서를 입수해 6.25 당시 미군이 일본 민간인 남성을 최소 60명 대동했으며 이중 18명이 전투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전선에서 사망한 일본인은 최소 2명으로 1명은 전사가 확인됐으며 1명은 행방불명됐다.
신문이 입수한 이 문서는 843쪽에 달하며 제목은 ‘한국에서 일본인의 무허가 수송 및 사용’이었다. 미군이 대동한 일본인 60명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들의 신상, 지문, 사진 등이 첨부됐다. 10~20대가 4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최연장자는 51세였다. 심지어 9세 아이도 있었는데 부모가 없는 이 소년은 “시마네현에서 미군 부대에 의해 끌려갔다”고 말한 것으로 문서에 기록돼있다.
이들은 1950년 7월쯤 한국으로 건너가 약 7개월 후인 1951년 1~2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60명 중 27명이 총, 칼 등 무기를 지급 받았으며 18명이 전투에서 이를 사용했다. 이 가운데 12세 소년을 포함한 최소 4명이 북한 인민군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4~5명을 죽인 것으로 당시를 회상하는 도쿄도 출신의 한 12세 소년도 있었다. 오사카 출신의 한 남성은 “7개월 간 전선에 있으면서 15~20명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전투에 참전하지 않은 이들은 현지에서 통역을 하거나 취사를 담당했다. 미군이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일본어가 많이 쓰일 것이라고 착각해 처음엔 다수가 통역 업무에 배정된 것이다. 당시 일본은 2차 대전 패전으로 연합국의 점령 하에 놓인 상태였다. 연합국최고사령부(GHQ)의 지시로 일본 정부는 한반도에서 항만 업무나 기뢰 제거 업무도 담당했다.
마이니치가 입수한 이번 극비 문서에 대해 일본 방위성은 “사실 관계를 알고 있지 않으며 대답할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6.25 전쟁 전문가인 오누마 히사오 교아이가쿠엔마에바시국제대학 교수는 “6·25 당시 구 소련이나 북한이 유엔에 ‘일본인들이 유엔군에 참전했다’고 비난했지만 직접 전투에 참여한 일본인들의 공적인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이 문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