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경영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자칫하면 도태된다”며 다시 한번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경기도 수원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비스포크 시리즈와 에어드레서 등으로 가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지만 최근 삼성전자를 둘러싼 안팎의 불확실성에 답답한 심정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삼성전자는 2·4분기 영업이익 6조원대도 위태로운 가운데 오는 26일 이 부회장의 기소 타당성 여부를 판단할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압박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생활가전사업부 주요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미래 전략을 점검했다. 간담회에는 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장 사장, 최윤호 경영지원실장 사장, 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장 부사장, 강봉구 한국총괄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진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제품 개발 현황과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 온라인 사업 강화 및 중장기 전략 등을 논의했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신기술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대응한 신제품 도입 계획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간담회를 마친 뒤에는 직원들을 격려하며 “흔들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자. 우리가 먼저 미래에 도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안팎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최근 활발한 현장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5일 반도체·스마트폰 부문 사장단과 릴레이 간담회를 가졌고 19일 화성 반도체연구소를 찾은 데 이어 이날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했다. 현장경영 속에 이 부회장의 발언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19일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해서는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 시간이 없다”고 했고 이날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은 자리에서는 “경영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역대급 위기에 처한 삼성의 심각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올 2·4분기 실적 감소가 예고돼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2·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50조3,500억원, 6조1,3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0%, 7%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6년 이후 가장 저조한 2·4분기 실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CE와 IM(IT·모바일) 부문은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영업이익 대폭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삼성전자 실적을 떠받치던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도 북미·유럽 지역의 메모리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반도체 현물가격이 계속 떨어지며 하반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도 다시 불거졌다. 26일 열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외부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지를 판단할 예정이다.
만약 검찰이 이 부회장을 다시 재판에 넘길 경우 삼성의 위기 경영이 올스톱되면서 삼성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부회장과 주요 경영진이 일주일에 2~3번가량 재판에 출석하고 재판 준비를 해야 해 위기 극복과 미래 준비에 집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시설·연구개발(R&D) 투자와 글로벌 인수합병(M&A)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 기소로 이 부회장의 새로운 재판이 시작되면 2022년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재판이 상당 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악의 경우 앞으로 5년간 사법 리스크로 삼성의 경영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변수연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