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취임 4년 만에 6·25전쟁 기념식에 처음 참석했다. 특히 이날 북한·미국·일본 등 6·25 주변국을 향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민주당의 뿌리이자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년 전 기념사와 묘한 대비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0년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모두와 끈끈한 우호 관계 속에 있다는 자신감을 앞세워 역사적 첫 남북정상회담 직후였음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외세를 배척하지 말고 미국·일본과 잘 지내라”는 메시지를 과감히 던졌다. 6·25 전쟁은 ‘소련 스탈린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을 공산 지배할 음모로 일으킨 전쟁’으로 규정하고 우리 조상들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미국·일본 등 우방국을 모두 자기 대북정책의 뒷배로 품으려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최근 주변국 대다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을 시사하듯 곳곳에 견제구를 던졌다. 6·25 전쟁은 ‘미소 냉전의 최전방에서 남북이 국력을 소모하고 일본만 전쟁 특수를 누린 전쟁’으로 풀이하고 우리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를 강조하는데 긴 시간을 썼다. 같은 민주당계 지도자이지만 한 사람은 주변국에 ‘화해’ ‘협력’이라는 전략적 메시지를 던진 반면, 한 사람은 ’민족자주’ ‘종전’이라는 정부의 현안 목표부터 우선적으로 부각한 것이다.
6·25 기념식 처음 나와 전쟁 피해 사실 일일이 읊은 文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 격납고에서 국가보훈처 주최로 열린 6·25전쟁 제70주년 행사에 직접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이례적으로 밤에 진행된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종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6·25 전쟁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 점이 무엇보다 눈에 띄었다.
문 대통령은 “전쟁은 국토 곳곳에 상흔을 남기며 아직도 한 개인의 삶과 한 가족의 역사에 고스란히 살아있다”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는 것이 ‘종전’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6·25전쟁으로 국군 13만8,000명이 전사했습니다. 45만 명이 부상당했고, 2만5,000명이 실종되었습니다.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학살·부상으로 희생되었습니다. 10만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으며, 320만 명이 고향을 떠나고, 1,000만 명의 국민이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했고, 경제적으로도 참혹한 피해를 안겼습니다. 산업시설의 80%가 파괴되었고, 당시 2년 치 국민소득에 달하는 재산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사회경제의 기반과 국민의 삶의 터전이 무너졌습니다.”라며 우리의 피해 사실을 일일이 읊었다.
이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6·25를 진정으로 기념할 수 없다”고 한 대목도 이목을 끌었다. 바로 현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인 ‘종전’의 중요성을 부각한 부분이자, 문 대통령이 왜 그 동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암시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그 와중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위협뿐 아니라 우리 내부의 보이지 않는 반목과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겨냥한 듯한 발언도 내놓았다.
“냉전에 남북 모두 국력 소모, 전쟁 특수 누린 나라도 있다” 견제구
문 대통령이 그 직후 국제관계 속에서 6·25의 의미를 평가한 부분은 더 의미심장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과 북은 긴 세월 냉전의 최전방에서 맞서며 국력을 소모해야만 했다”며 “우리 민족이 전쟁의 아픔을 겪는 동안, 오히려 전쟁 특수를 누린 나라들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나라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냉전을 주도한 국가가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였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6·25로 전쟁 특수를 누린 대표 국가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6·25의 주된 책임을 주변 강대국에 돌리고 북한까지 분단의 피해자로 해석한 듯한 표현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전후 경제의 재건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길이었다”며 “경공업, 중화학공업,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차례로 육성하며 선진국을 따라잡기까지 꼬박 70년이 걸렸다”고 아쉬워했다.
한미동맹을 언급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두 번 다시 단 한 뼘의 영토, 영해, 영공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침탈의 주체가 누구인지 뚜렷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말하면서도 곧바로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도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제를 돌렸다. 특정 세력이 아닌 모든 외세에 대한 자주·자립적 국방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DJ는 “스탈린 공산화가 전쟁 목적... 日도 당시 취약”
근현대사, 국제관계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와 상당한 대조를 이뤘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역사상 최초로 김정일을 만나고 온 직후였음에도 6·25전쟁에 대한 공산 진영의 책임을 돌려 말하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오랫동안 사상을 의심받다가 김정일까지 만나고 온 참이기에 더 단호한 연설을 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 기록관에 따르면 2000년 6월25일 김 전 대통령은 기념사 초반부터 “한국 전쟁은 단순히 남한만 공산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며 “스탈린의 목적은 당시 취약했던 일본을 포함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공산지배에 대한 음모가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그 뜻을 기리는 호국선열들의 희생은 이 땅을 지켜내었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막는 데에도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쟁의 책임을 소련까지 확대하고 남한뿐 아니라 일본까지 위협받던 나라로 분류한 것이다.
같은 민주당계 지도자이지만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문 대통령의 연설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오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1920년대 생인 김 전 대통령은 일제 시대를 거쳐 이미 성인이 된 상태에서 6·25를 겪었지만, 문 대통령은 휴전 직전인 1953년 1월 실향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점도 두 지도자 간 의식 차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6·25의 피해 사실에 대해선 “수백만의 사람이 희생되었고 국토가 초토화되었다”고 짧게 요약했다.
“우리 조상 탓에 6·25 발발... 통일돼도 주한미군 필요”
김 전 대통령이 분단의 원인을 따지는 과정도 문 대통령과는 사뭇 달랐다. 김 전 대통령은 “분단의 원인은 일제 지배에 있고 물론 이를 규탄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었다”고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김 전 대통령은 “19세기 말 서구의 물결이 도도히 동쪽으로 흘러들어 올 때 역사는 우리에게 국민적 단합과 근대화를 위한 개국을 요구했다”며 “일본은 그렇게 해서 성공했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역사적 소명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결과 국력은 쇠잔해졌고 6.25의 비극도 19세기 우리 조상들의 잘못된 자세에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도 분단에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주요 외교안보 파트너인 일본을 자극하지 않고 심지어 근대화 성과를 치켜세우는 김 전 대통령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화법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제 시대를 겪은 국민들이 많아 반일 감정이 지금보다 더 날카롭게 살아 있었음에도 김 전 대통령은 이를 정면 돌파했다.
게다가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력하게 주장하며 한미동맹 균열을 우려하던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미국 행정부에도 우호 메시지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에 있는 10만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전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 올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천명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나아가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 체제가 이루어 질 때까지는 물론이고 통일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북측에 설명했고 북측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협력’이라는 단어를 19번이나 사용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 용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체제강요 안해” vs “외세배척 말라”... 대북 메시지도 대조
6·25 70주년 문 전대통령과 50주년 김 전 대통령이 북한에 보낸 메시지에도 온도 차가 컸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전제가 되는 주변국들과의 외교관계가 두 지도자의 자신감에 서로 다른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북한에 대해 “우리의 체제를 강요할 생각도 없다”며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이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손을 내밀었다. 최근 파탄에 빠진 남북관계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평화와 번영은 8,000만 겨레 모두의 숙원”이라며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 담론에 앞서 종전선언부터 촉구한 것이다. 이는 중국·러시아는 물론 전통적 우방인 미국·일본과도 최근 관계가 소원한 상황이 투영된 발언이었다.
20년 전 김 전 대통령은 이미 그 직전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북 메시지를 정상회담 내용을 국민들에게 다시 보고하는 형식으로 갈음했다. 특히 “남과 북은 또한 우리 민족문제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데 합의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주란 외세배격과 같은 기존의 북한 주장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우리가 미국·일본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도 중국, 러시아와 잘 지내듯이 북한도 러시아·중국과는 물론 미국이나 일본과도 잘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만큼 주변국과의 관계에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세계, 특히 주변에 있는 미·일·중·러 4대국과 협력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끼리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하자는 의미”라며 “우리는 앞으로도 한·미·일 간에 공조체제를 굳건히 유지할 것이며 중국과 러시아와도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민주당과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 주장하는 대북정책 방향과는 같은 듯, 다른 철학이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