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직원 절반 휴직시키거나 주3일 운영하거나" 양산 산단마저 쓰러진다

2008년 금융위기도 견뎌냈던

양산 산업단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3일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섬유제조 공장은 주문량이 70% 급감해 수십대의 설비 중 2~3대만 가동되고 있는 가운데 격월로 출근한 한 직원이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이재명기자3일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섬유제조 공장은 주문량이 70% 급감해 수십대의 설비 중 2~3대만 가동되고 있는 가운데 격월로 출근한 한 직원이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이재명기자



지난 3일 경남 양산 어곡산업단지 안에 있는 한 금속제조공장. 평일 오전이지만 적막감이 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쇠가 갈리는 굉음이 쩌렁쩌렁하게 흘러 넘쳤지만 지금은 공장 문이 닫혀 있다. 철문 너머로 아침에 배달된 신문 뭉텅이가 비에 젖어 바닥에 들러붙어 있었다. 단지 안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주3일, 주4일 근무를 하는 곳이 넘쳐 난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매곡마을 사저와 직선거리로 13km 떨어져 있는 유산산업단지도 평일이지만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아 놓거나 일부 설비만 가동하고 있었다.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부품 주문량이 70% 나 급감했다”며 “공장을 아예 세워둘 수는 없어 무급 휴가나 주 3일 출근 등으로 인건비를 줄여가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양산 산단은 북쪽의 어곡산단과 중간의 유산산단, 남쪽의 산막산단으로 이뤄져 있다. IMF 직후인 2000년에 소위 잘나가는 기업들만 유치해 부산·경남지역에서 가장 건실하다고 평가받는 산단중 하나지만 현장은 기계 소리가 잦아든 ‘조용한 공장’으로 변했다.


수출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전국의 산업단지가 코로나19로 휘청거리고 있다. 가장 최근 수치인 4월 국가산단 생산실적을 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국가산단의 4월 생산실적은 35조1,848억원을 기록했지만, 전월대비 12.9% 감소했다. 코로나19 피해가 확산되면서 생산실적이 곤두박질 친 것이다.

국가산단별로도 전월대비 생산실적이 플러스를 기록한 곳은 전무하다. 전월대비 대구는 -32.8%, 구미는 -24.1% 하락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산단도 마찬가지다. 서울은 -7.1%, 남동 -3.6%, 시화 -10.2%로 마이너스 행진이다.

전국 산단의 생산액도 보기에 겁이 날 정도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난 해 2·4분기 전국 산단의 생산액은 270조원이던 것이 올 1·4분기에는 241조원으로 하락했다. 통계청 기준으로 5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금융위기 시절 이후 최저치인 63.8%를 기록했다고 나오지만, 현장에서 ‘통계치 가동률’보다 훨씬 심각하다. 유산 산단의 한 파이프 가공업체 대표는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은행에서 받은 대출을 역산해보면 9월이면 바닥이 난다”며 “사실상 시한부 상태”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나마 1차 하청업체인 대형 공장은 주 3·4일 근무제로 전환해 가동률을 급격히 낮추고, 소형 공장은 격월 무급 휴가나 직원 감축으로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보유한 내부자금으로는 9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장가동률이 40%로 떨어지면서 매각이나 경매 등을 통한 매물도 급증하고 있다. 일부 공단의 경우 마스크 붐에 맞춰 돈이 될 수 있는 마스크공장으로 잇따라 전환하다 보니 폐업한 제조공장의 빈자리를 마스크 공장이 메우는 상황도 나오고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에 위치한 유산산업단지, 어곡산업단지, 산막산업단지 전경. /이재명기자경상남도 양산시 북부에 위치한 유산산업단지, 어곡산업단지, 산막산업단지 전경. /이재명기자


경남 양산 산업공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곡 산단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 삼정CT. 차에 들어가는 내장재 부직포를 만드는 이 회사는 이번 달 일감이 전년 대비 70%나 줄었다. 공장 가동률은 30%를 간신히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표현이 무리가 아니다. 이 회사의 이모 사장은 “지난 5월부터 전체 직원 30명 중 절반은 무급휴가로 돌리고 나머지 직원으로 하루 8시간만 일하며 버티고 있다”며 “미국·남미·유럽 할 것 없이 국내 완성차 수출이 죽을 쑤고 있어 묘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은행 대출금 3억원은 운전자금으로 다 빠져나갔고 일감도 급감해 회사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대로라면 오는 9~10월이 고비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삼정CT의 현실은 국내 주력산업 생태계가 밑동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견뎌냈던 양산 산업단지가 통째로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동차·조선·가전 등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던 부품업체가 하나둘 쓰러져간 자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테크로 치부하던 마스크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공단에서 조선 부품사를 운영하는 한 최고경영자(CEO)는 “1980년대 양산 공단이 조성된 후 요즘이 최고 위기”라며 “주위를 둘러보면 마스크 공장만 바쁘다”고 허탈해했다.


◇일감 쪼개며 버틴다지만…한계 상황 직면한 산업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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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산업 생태계의 붕괴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전국 산업단지의 4월 수출(95억2,900만달러)과 생산(35조1,848억원)은 전달 대비 각각 35.2%, 12.9% 줄었다. 현대차에 납품하는 부품사와 현대중공업 관련 조선기자재 업체가 포진한 울산·미포 공단의 경우 수출이 58.5% 감소하는 등 주력산업 부품사들이 밀집된 공단일수록 타격이 심하다. 설상가상 5월 이후 실적은 더 나빠질 게 확실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불붙으면서 원청업체 격인 대기업 실적이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양산에서 만난 부품업체들도 난맥상에 허덕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금속 파이프를 정밀 가공해 주로 해외에 납품하는 신성정공은 10대 설비 중 고작 2대만 돌리고 있다. 일감이 태부족이다 보니 평소 같으면 2주 만에 끝날 일을 한 달을 꽉 채워 마감하는 실정이다. 기계설비업체인 동호산업도 80명의 직원을 3교대로 4일씩 출근시키고 있다. 공단 입주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직원 중 절반을 휴직시키고 설비를 조금씩 돌리며 버티는 곳과 주 3~4일 근무하고 금요일은 아예 일찍 문을 닫아버리는 곳 등 두 부류로 나뉜다”고 말했다.

3일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금속제조 공장의 철문이 평일 낮임에도 굳게 닫혀 있다. 일대 공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없어 공장을 4일만 열거나 직원을 주 3·4일제로 출근시키면서 버티고 있다. /이재명기자3일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금속제조 공장의 철문이 평일 낮임에도 굳게 닫혀 있다. 일대 공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없어 공장을 4일만 열거나 직원을 주 3·4일제로 출근시키면서 버티고 있다. /이재명기자


◇축소경영, 가족경영 팽배…마스크 공장만 활황

현실과 유리된 정책도 중소기업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인건비 때문에 직원 대신 가족으로 ‘때우는’ 업체가 수두룩했다. 어곡 산단 내의 한 업체 사장은 “최저임금이 워낙 올라 직원은 최소로 출근시키고 사장 혼자나 부부끼리 밤늦도록 일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다른 업체 사장도 “코로나19로 대출금리 1.8%로 10억원을 대출받았다고 치면 1년에 낼 이자가 연 1,800만원이나 되는데 한사람 연봉은 된다”며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외국인 인력은 ‘밑 빠진 독’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야근이나 주말 특근을 시키려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난감하다”며 “숙식까지 제공하는 판이라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읍소했다.

모두 축소경영에 혈안이지만 마스크 업종만 딴판이다. 최근 서너 달 새 새로 생긴 업체가 10여개에 이른다. 마스크가 생필품이 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산업 밸류에이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단 내의 한 업체 관계자는 “마스크 업체 중에는 폐업 상황이던 다른 공장 부지를 사들여 한 달 만에 공장 매입 비용을 벌어들였다는 곳도 나오고 있다”며 “자연스럽게 정리되기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산업단지는 퇴근시간에도 문을 연 공장이 많지 않아 도로가 텅 비어 있는 가운데 공장 매매·임대 현수막과 코로나19 관련 현수막이 담벼락에 붙어 있다. /이재명기자지난 3일 오후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산업단지는 퇴근시간에도 문을 연 공장이 많지 않아 도로가 텅 비어 있는 가운데 공장 매매·임대 현수막과 코로나19 관련 현수막이 담벼락에 붙어 있다. /이재명기자


◇9~10월 위기설 파다…옥석 가려 재정 투입해야

중소기업계에는 9~10월 위기설이 나돈다. 상반기 정책자금의 약발이 끝나고 가을이면 금융권 만기상환연장(롤오버) 조치도 무작정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 옥석 가리기를 통해 기업 정리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시장에서 자생력이 떨어지는 업체가 조만간 나타난다”며 “좀비 기업을 솎아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령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곳, 현금 흐름이 그나마 나은 기업을 상대로 한시적으로 정책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조조정 없는 무차별 지원은 청년층 일자리 문제를 심화시키고 소비 기반도 약하게 만들어 산업 생태계를 안으로부터 곪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과 별개로 재정 투입은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만큼 재난지원금과 같은 원샷 지원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상훈기자 양산=이재명기자 shlee@sedaily.com

이재명·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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