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강해졌고, 인간은 더 잔인해졌다. 살아남겠다는 처절한 이기심은 사고 불능의 존재보다 더 야만적이고 위협적인 또 다른 괴물을 낳았다. K 좀비의 탄생을 알린 영화 ‘부산행’의 후속편인 ‘반도’는 폐허 된 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각기 다른 욕망의 주체들’의 사투를 통해 또 한 번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좀비 떼의 습격을 받은 그 날로부터 4년 후가 배경이다. 저주받은 땅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정석(강동원)은 홍콩에서 ‘병균 취급’이나 당하며 방황하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반도로 돌아온다. 고국에서 정석을 기다리는 것은 굶주린 좀비 떼와 이들보다 더 끔찍한 존재로 전락한 631부대의 사람들, 그리고 잿빛 폐허에서도 가족을 일구고 살아가는 민정(이정현)과 두 딸 준이(이레)·유진(이예원), 그리고 전직 군 간부 김 노인(권해효)이다.
좁은 KTX에서 한반도로 무대가 확장되면서 볼거리도 한층 풍성해졌다. 불빛을 보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 떼는 그 수와 스피드, 움직임이 전작을 뛰어넘는다. 진화한 좀비들이 점령한 서울 도심과 인천항은 컴퓨터 그래픽을 거쳐 익숙하기에 서늘한 디스토피아로 재탄생했다. 광활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특히 자동차 추격전은 단연 돋보인다. 부산행에서 맨주먹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어다니기 바빴던 인간은 엄청난 속도감의 자동차를 타고 두꺼운 ‘좀비 벽’을 뚫고 내달린다. 631부대의 개조 차량과 민정·정석이 탈취한 트럭, 준이의 자동차가 뒤엉키는 추격 장면에서는 영화 ‘매드맥스’가 떠오른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불편하리만큼 선명해졌다. 좁은 열차에서 살아남겠다며 칸을 나누고 문을 걸어 잠갔던 사람들은 이제 탈출과 돈 앞에 ‘인간과 좀비’를 구분하지 않는 사냥꾼으로 변해 있다. 힘 없는 인간과 좀비들을 한 데 몰아넣은 케이지는 야만성이 지배하는 투견장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공포의 대상은 빠르고 강력하고 많아진 좀비보다 이성을 잃고 더 악랄해진 인간이다. 부산행에서는 확실한 빌런(악당) 없이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로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성’을 부각시켰다면 반도에서는 악역들의 전사(前史)를 과감히 생략한 채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이 비극의 확장판에서 보여주고 팠던 것은 희망이다. 연상호 감독은 지난 9일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반도가) 부산행보다는 희망적이었으면 했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그 바람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서로를 챙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민정의 가족과 이들을 통해 변하는 정석의 모습에 담아냈다. 연 감독은 “캐릭터들은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탈출한 이후의 바깥세상도 녹록지 않다는 설정”이라며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구와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내가 살던 곳도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극 말미 준이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목숨 걸고 탈출하고 싶었던 반도,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았던 반도에 대해.
전작의 탄탄한 드라마와 신선한 충격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쾌감 넘치는 액션과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15일 개봉.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