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26일 대만 최남단 헝춘시에서 남서쪽으로 23㎞ 떨어진 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진앙지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 공해인 바시해협 (Bashi Channel) 밑의 해저였다. 대만 기상국은 이 지진이 100년 만의 최대 규모라며 원자폭탄 6개와 맞먹는 위력을 지녔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인명 피해는 사망 2명, 부상 40여명으로 우려보다 적었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큰 혼란이 벌어졌다. 이튿날부터 대만·홍콩·싱가포르·한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유럽에서 인터넷과 국제전화 불통 사태가 빚어졌다. 중국 본토·홍콩에서 아시아 및 미국·유럽으로 연결되는 심해 광케이블 8개 중 7개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바시해협은 대부분의 아시아 해저 광케이블이 관통하는 곳이어서 그만큼 피해가 컸다.
‘헝춘 지진’으로 인해 통신망 경유지로서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바시해협은 원래 군사적 요충지였다. 서쪽의 남중국해와 동쪽의 태평양을 연결하는 길목(너비 150㎞)이어서 해협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국과 미국·대만 등 주변국들의 각축전이 치열한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일본군과 연합군 사이에 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945년 7월에는 독일로부터 당시 최고 속도를 자랑하던 로켓추진전투기 ‘Me163 코메트’의 설계 자료를 넘겨받은 일본의 잠수함이 은밀하게 본국으로 들여오려다 바시해협에서 미국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격침당했다. 설계 자료도 함께 수장되면서 독일기술을 복제한 신형전투기로 전세를 역전시키려던 일본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최근 바시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정찰기들이 지난 6~8일 사흘 연속으로 바시해협을 통해 남중국해로 들어가 중국 광둥성 연안을 근접 정찰했다. 8일에는 지상과 공중의 모든 신호를 포착해 분석할 수 있는 정찰기(EP-3E)가 중국 영해 95㎞까지 접근했다. 미국 정찰기들의 항로가 중국 연안에 점점 가까워지자 중국군이 강력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무역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등 미중 갈등 요인이 쌓이고 있어서 바시해협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질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