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무차별 대출회수땐 줄도산…'자구노력 전제' 차등지원해야"

[대한민국 부채 리포트]

<하>기업부채 해법은

혁신·생산성 갖춘 기업 살리기 등

코로나 정국에 맞춘 새 모델 시급

기촉법 개선 '부채 연착륙' 유도를

금융당국·금융권 팀플레이 절실

'부채 해결사' 전면배치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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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밀집한 경기도 반월공단 전경.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연합뉴스중소기업이 밀집한 경기도 반월공단 전경.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첨단산업단지에 위치한 발광다이오드(LED) 의료기기 업체 A사의 이모 대표는 다가오는 9월이 몹시 두렵다. 지난 3월 정부 지원으로 한 차례 연기됐던 20억원 은행 대출 만기연장이 다시 도래하기 때문이다. 6개월이면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더 악화되는 쪽으로 번지면서 A사의 주력시장인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영업은 6개월째 개점휴업이다. 이 대표는 “해외 수출이 완전히 막히면서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추가 담보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며 “은행들이 (9월 이후) 무차별 대출회수에 나서면 우리 같은 업체들은 흑자도산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20억원의 부채가 별 부담이 되지 않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전대미문의 악재가 덮치면서 ‘20억원’은 한 중소기업의 명줄을 흔드는 폭탄이 돼버렸다.

◇기업부채 연착륙 타이밍인데… 해법 제시 못하는 정부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기업부채도 ‘악성이냐, 경영활동을 위해 불가피하게 생긴 부채냐’를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대출을 안고 있는 기업은 이번 기회에 부채를 서둘러 해소하도록 유인하고 가망이 없는 ‘좀비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을 통해 자연스러운 퇴출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의 옥석을 가린다며 투박하게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액셀을 밟는 격이 되기 때문에 정교한 정책 설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기업부채 문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팀플레이’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복잡한 계산을 하다 보니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잘못 나섰다가는 재정(예산)으로 기업부채를 해결하려 들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어서다. 버티다 보면 정부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신호를 주는 순간 금융시스템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질 수 있다. 당장 어려운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금융권에 기업 대출의 만기연장을 무작정 압박하거나 추가 대출을 종용하면 기업들의 모럴 해저드를 넘어 나중에 금융시스템까지 붕괴시켜 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자니 금융권이 대출회수에 나서 흑자부도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고 연착륙을 위한 타이밍도 놓칠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내년은 사실상 대선모드로 들어가기 때문에 난제에 손조차 대지 못하는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


◇자구노력 전제로 지원 기간·규모 차등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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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량·부실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도 중요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국내 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며 “새 리스크 관리모델을 마련해 연구개발(R&D) 등 혁신역량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곳, 공정개선을 통해 생산효율 제고에 성공한 기업은 정부가 반드시 살린다는 가이드라인을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부실기업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차등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지원 후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기업에도 자구책을 요구하면서 지원 기간·규모·방식을 차등화하는 게 부채 연착륙을 유도하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봤다.

재계에서는 재무구조 악화 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개선과 상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을 신속하게 구조조정하려면 기촉법의 개선과 상시화가 필요하고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해결사 전면 배치 등 정부 역량 신뢰 높여야

일부에서는 남북관계가 막히자 북한통을 전면 배치한 것처럼 금융당국도 기업·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사’를 앞세우는 등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동산대책이 백약이 무효가 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나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모처럼 증시로 몰리는 상황에서 거래서 인상 등의 엇박자 정책을 내놓는 것과 같은 ‘실수’를 보였다가는 기업부채 연착륙이 아닌 시장의 혼란을 부르거나 모럴 해저드 확산을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이슈 때마다 핵심을 비껴가고 논란만 양산하는 금융당국의 전면 쇄신없이는 기업·가계부채 해결이 요원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이전부터 어렵던 기업은 재정 정책으로, 대한항공처럼 코로나19로 힘든 기업은 대출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부와 은행이 정교한 데이터를 갖고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소홀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상훈·박효정·이재명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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