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신고 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엄수된 가운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에게 “피해 호소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대표가 사용한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표현에 대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라며 날을 세웠다. ‘피해자’라는 단어를 두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미다.
13일 이 대표는 비공개 고위전략회의가 끝난 뒤 강훈석 수석대변인을 통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예기치 못한 일로 시정 공백이 생긴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 피해 호소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당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강 수석대변인은 당차원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 고소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몰랐다”고 선을 그었고, ‘피해자의 고소 내용이 박 시장에게 바로 전달된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이 대표의 공식 사과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피해 호소 여성’이 무슨 뜻이냐”며 “또 다시 그 빌어먹을 ‘무죄추정의 원칙’인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속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민주당의 기본입장은 진성준 의원이 잘 말했다. 가해자를 가해자라 부르고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면 ‘사자명예훼손’이 된다는 것. 이것이 민주당의 공식입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피해자’라는 말을 놔두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생소한 신조어를 만들어 쓰는 것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라고 “지금 여론에 못 이겨 대충 사과하는 척 하고, 사건은 그냥 종결하고 넘어가겠다는 것. 그래서 영원히 무죄추정의 상태로 놔두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기자 분들이 민주당에 꼭 ‘피해 호소 여성’이 무슨 뜻인지 물어봐 달라”며 “앞으로 진상규명 어떻게 할 건지도 (물어봐 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비서 측은 13일 오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이 4년 동안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고소인 측은 “업무시간 외에 퇴근 후에도 사생활을 언급하고 신체 노출 사진을 전송했다”며 “심지어 부서 변동이 이뤄진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지속했다”고 했다.
고소인 측 주장에 따르면 박 시장은 시장 집무실과 집무실 내 침실 등에서 고소인에게 안아달라며 신체적 접촉을 하고, 집무실에서 셀카를 찍는다며 신체적으로 밀착하기도 했다. 고소인의 무릎에 난 혹을 호 불어주겠다며 입술을 맞추기도 했다.
또 고소인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초대해 본인의 속옷 차림 사진과 음란한 문자를 전송하는 등 점점 가해 수위가 심각해졌다. 고소인 측은 “늦은 시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박 시장에게서 음란한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었다”고 밝혔다.
고소인 측은 “박원순 시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안을 접하면서도 본인 스스로 가해행위를 성찰하거나,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멈추지도 않았다”며 “고소와 동시에 박원순 시장에게 고소 사실이 전해졌고, 피해자가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피해자와 변호인이 만나 면담했다”고 설명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 사건은) 거부나 문제제기 못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며 “전형적 직장 내 성추행임에도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 고소 더 이상 못하는 상황이 됐지만,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박 시장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전직 비서 A씨는 지난 8일 ‘박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박 시장을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17년 이후 성추행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신체접촉 외 휴대폰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개인적 사진을 수차례 전송했고, A씨는 이를 경찰에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고 규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