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여름, 30대 미혼모가 서울 강동구의 한 건물 화장실에 아기를 버리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친모를 영아 유기혐의로 입건했다. 범인은 붙잡혔지만, 어머니를 가해자로 둔 아기는 보호시설에 맡겨져야 했다. 그렇게 평생 어머니 품을 안기지 못할 뻔 한 아기는 현재 어머니와 함께 자라고 있다. 해당 가정을 담당한 최미영(42·사진) 강동경찰서 경위와 동료 학대예방경찰관(APO)이 수개월에 걸쳐 주거·경제·심리 지원방안을 마련한 덕분이다.
지난 9일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만난 최 경위는 “세상의 어떤 엄마도 아기를 버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당시 가해자도 경제력은 물론 거주지도 불안정한 상태였다”며 “지원 절차를 마치니 어머니께서도 보호시설에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용기 내주셔서 참 보람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피해가정을 만날 때면 항상 이 시기가 지나가면 웃을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한다”며 “시간이 흘러 잘살게 된 가정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긴밀히 연결돼있는 만큼 예방과 사후조치에 많은 품이 든다. 남의 가정에 개입한다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개입 후 가정이 정상화되기까지도 1~2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지난해 강동서에 접수된 학대 신고만 2,240여 건.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APO의 어깨가 항상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 경위는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어려울 경우 처벌을 받더라도 결국 가정이 짊어지고, 보복범죄가 일어날 위험도 크다”며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내 자식같이, 내 부모같이.” 수많은 가정을 지원하며 최 경위가 내린 결론이다. 최 경위는 “같은 엄마 입장에서 공감해준 것이 전부인데도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고 하거나 가정폭력이 재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잠시지만 가족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게 그분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도 112 신고가 선행돼야 한다고 최 경위는 강조했다. 그는 “피해가정을 만나보면 스스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지 모르거나, 자신의 행동이 학대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해드릴 수 있는 지원이 많은데 어렵다고만 느끼지 말고 112 신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7월부터 천호사거리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지역민들과 제작한 ‘아동학대 없는 세상’이라는 동영상도 송출하고 있다.
‘잠재적 빈곤층’으로 불리는 차상위계층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은 여전히 최 경위의 고민거리다. 최 경위는 “야채트럭 등 자가용을 한 대라도 소유하면 정부지원 대상에서 벗어나 민간지원을 받아야 한다”며 “가정폭력의 원인이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문제로 누가 봐도 가난해서 벌어진 불화인데 정작 생계지원에는 애를 먹는 일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 7일 강동구가 아동보호팀을 신설한 것을 언급하며 “APO와 지자체 간 협업이 늘어난 만큼 지원계층도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사진=성형주기자